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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펠핑, 그리고 뮌헨 방문 소감

관리자 2018.04.13 21:56 조회 수 : 28

그래펠핑, 그리고 뮌헨 방문 소감

                                                  히라이 토시하루 (平井敏晴)
그 날 나는 차창의 밖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오랫동안 짊어왔던 짐을 드디어 내려놓을 수 있어서 맑은 기분이 들었는데 차창에 흘러가는 풍경은 어두운 하늘 아래 울려 퍼지고 있었다.
2018년 1월1일. 나는 그 날 아침 뷔르츠부르크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뮌헨으로 가고 있었다. 15년 만에 온 독일. 그래서 기쁘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 여행이 더 기뻐지는 이유는 이 번 뮌헨 방문이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압록강을 흐른다” 일본어판 번역자이지만 이 책을 낸 후 7년 동안 이미륵 박사를 뵐 기회가 없었다. 일어판을 출판 후 2, 3년 내에는 독일에 갈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 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렇게 계속 못 뵈면 이 박사님에게 큰 실례가 돼 버릴텐데..... 그 동안에 이런 생각이 점점 커지고 나는 항상 큰 짐을 어께에 짊어지고 있는 기분을 갖게 되었다.
나는 뮌헨중앙역 앞에 있는 호텔에 짐을 풀고 점심 식사 후, 송회장님과 이 박사님이 계시는 그래펠핑으로 갔다. 돌아가신 분들이 머무는 그 곳은 신년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송회장님은 그 분들에게 인사를 하시면서 나를 이 박사님의 묘로 안내 해주셨다.
뮌헨의 겨울은 역시 춥다. 우리가 박사님에게 큰 절을 하는 동안 잠깐 눈도 바람 속에 춤을 춰준다.
이 만남이 사람들에게는 그냥 성묘일 뿐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거기서 한 것은 한국 사람들이 성묘할 때 하는 것을 아주 간단하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까 말한바 같이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이제 나는 어떤 책임을 다한 느낌을 가졌다.
그런데 이 번 내 방문은 송회장님 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나는 이 부분을 소감으로 여기에 남기고 싶다.
송회장님은 지금 뮌헨시내에서 이미륵에 대한 기념관을 준비하신다. 나도 안내를 받고 거기에 가서 1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나는 그 때 회장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에 깜짝 놀랐다. 이미륵 박사의 업적과 생애를 새로운 시각으로 평가할 수 있으면 좋겠고 그래서 좀 도와달라고 말씀을 하신 것이다.
연세가 나보다 두배 가까이나 윗분인 분한테 이런 부탁을 받는 것은 예상도 못했던 일이다. 물론 그 부탁은 어려운 숙제인 것을 송회장님도 알고 계신다. 물론 지금까지 이미륵연구도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연구를 해왔던 세대보다 젊은 세대가 새로운 시선으로 연구할 때가 됐다는 것이 회장님의 생각이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이미륵 박사님은 독일에 오셔서 한국과 일본, 중국의 문학과 문화에 대해서 강의를 하셨잖아요. 그래서 저는 ‘동아시아의 평화’라는 시각으로 이미륵 박사님의 생애와 활동을 보는 것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 말씀은 저에게 큰 힌트가 되었다. 그 때도 이야기가 나왔지만 이미륵 박사님은 일본 고전문학 중 가장 유명한 한 작품의 독일어판 편집자다. 그 작품은 14세기 전반에 요시다 겐코(吉田兼好)라는 승님이 그린 『つれづれ草』(Tsurezuregusa). 번역을 맡은 사람은 나중에 유럽 일본학의 대가가 된 오스카 벤르 (Oscar Benl)다. 그 독일어판은 출판사의 “세계문학시리즈”의 하나로 기획되었다.
세계문학이라는 개념은 19세기 괴테 (Goethe)가 만든 것인데 간단하게 말하면 이 말을 통해서 유럽사회는 각 지역, 각 민족의 문학을 모여서 그 들을 통해서 세계를 초민족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지향했다.
그리고 나는 이번 뮌헨 방문을 통해 새로 알게 된 것이 있다. 이미륵 박사가 뮌헨에서 활동을 하셨던 시대는 역사적으로는 어두운 시절이었지만 문화적인 시각으로 보면 좀 다르다. 예를 들어, 바이에른 왕국이 사라진 후 그 매혹적인 유산이 일반시민에게 공개가 되었다. 이미륵 박사님도 그 것을 봤었을 것인데 그 유산들은 문화학적으로 보면 세계문학의 흐름과 겹친다.
그래서 이미륵 박사님의 생애는 이런 뮌헨의 문화의 흐름으로 보면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박사님은 그냥 독일에 건너간 조선인 일 뿐이 아니라 유럽문화의 큰 흐름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한 것이 우리 세대에게 보일 것이다.
나는 “압록강은 흐른다” 일본어판의 뒷말 중에 이런 내용을 이미 적어 놓았지만 이제 좀 더 깊이 검토할 시기가 온 것 같아. 그러고 보니, 이 박사님께서는 그 일본 고전문학 독일어판 인사말 중에서 요시다 겐코에 대해서 이런 글을 실으셨다.
“마음 깊은 곳에서 그는 <영원한 고향>을 그리워했으며 덧없는 세상의 허무함을 항상 의식하고 있으면서도, 그래도 그는 마음이 세상에 기울고, 애정이 가득한 말씀을 그 세상을 위해 누누이 올렸다. 요시다 겐코는 철저히 동양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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