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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작가 이미륵과 카메라

기념사업회 2019.09.05 20:32 조회 수 : 8

 

[장석주의 사물극장] [114] 재독 작가 이미륵과 '카메라'

조선일보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입력 2019.09.05 03:10

1950324일 이른 봄날, 독일 뮌헨의 한 공동묘지에서 장례식이 있었다. 무덤가에 화환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꽃향기에 몰려든 벌들이 잉잉거렸다. 동아시아의 낯선 나라에서 망명한 남자, 철학자이자 작가, 한문과 서예의 스승이자 친구였던 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독일인 200여 명이 모여 장례식을 치렀다.

이미륵(1899~1950)은 뮌헨대학에서 한국학과 동양철학을 강의하고, 독일어 장편 '압록강은 흐른다'를 썼다. 1944724일 뮌헨의 피퍼 출판사와 1000마르크를 받고 출판 계약을 맺었다. 1946년에 나온 이 소박하고 우아한 독일어 소설에 독자들이 열광했다. 독일에서만 최소한 55개가 넘는 서평이 쏟아지고, 소설의 일부는 독일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다.

독일에서 첫 '한류' 주인공은 재독 작가 이미륵이다. 그는 경성의학전문(지금의 서울대학 의과대학) 3학년 때 3·1운동에 가담했다. 일본 경찰의 수배를 받자 상하이로 도피했다. 1920년 중국 여권을 갖고 프랑스 여객선을 이용해 독일로 왔다. 뮌헨대학에서 자연과학을 전공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신문에 한국 민담이나 이야기를 기고해서 받은 원고료가 수입의 전부였다.

그는 빈대가 끓는 방에서 빈곤한 살림을 꾸렸지만 비싼 카메라를 갖고 있었다. 사진을 찍고 현상을 해서 친구들에게 주는 걸 아주 좋아했다. 1930년대 말경 어느 날, 독일군의 시가행진 광경을 찍다가 비밀경찰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았다. 그는 몇 시간 동안 독일어를 못 알아듣는 양 묵묵부답했다. "저 녀석 바보인가 봐, 그냥 내보내줘!"라며 풀어주었다. 이미륵은 경찰의 감시를 받으며 고단한 망명 생활을 이어갔다. 생활고, 질병, 고독, 향수병도 심각했다. "저녁이 되어 어둑어둑해지면 어딘가에 앉아 내 생애와 세상사, 내 질병과 현재 생활, 즉 상처받고 파손된 인생의 의미, 소실되어 버린 내 유년 시절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어." 그는 고향을 그리워했지만 돌아오지 못하고 이국의 공동묘지에 묻혀 잠들었다.

 

Copyright 조선일보 &Chosun.com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9/04/201909040298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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