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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륵 소설에 나타난 고향의식연구④

문학평론가. 부산문인협회 회장 정영자 2011.12.06 10:39 조회 수 : 6995

4. 작품 속에 나타난 고향의식

 

이미륵 소설의 분석표

3.JPG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수 있습니다.)

 

 

(1) 『압록강은 흐른다』

 

『압록강은 흐른다』는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는 소설이다. 비록 독일에서 독일어로 발표되긴 했지만 초판이 나온 것은 반세기도 전인 1946년이었으며, 전혜린에 의해 국내에 번역 소개된 것도 지난 1959년의 일이다. 이후 수 차례 재출간이 이뤄졌다.
 『압록강은 흐른다』는 작가 자신의 성장 과정을 소박하게 서술한 전형적인 일인칭 시점의성장소설이다. 조선시대말 황해도 양반가문의 풍습과 정서, 고향의 서정적인 풍광 그리고 당시 신식문물을 접하는 놀라움이 잔잔하면서도 정감있는 필치로 그려져 있다.
  주인공 나는 언제나 한살 위인 사촌 수암을 전면에 내세워 이야기 구성을 해나간다. 어린 시절 사촌 수암과 함께 자라나는 ‘나’는 서당을 다니다가 아버지의 권유로 신식중학에 다니게 된다. 서당에서 한학(漢學)을 공부하였으나 개화의 급박한 물결과 함께 신식 중학에서 서양식의 교육을 받게 된다 그러나 건강이 나빠 학교를 중단하게 되고 혼자서 강의록으로 계속 독학하여 의학 전문학교에 입학한다. 그가 3학년이 되던 해 3·1운동이 일어나 조국의 기구하고도 불행한 운명에 울분을 품고 동료 대학생들과 더불어 전단을 인쇄하고 살포하는 등 항일 운동을 한다. 그러나 일제의 폭압에 결국 '나'는 상해로 망명하고 상해에서 다시 우여곡절 끝에 독일로 향한다.
 유려하고도 간결한 필치의 독일어로, 임금님이 나라를 다스리던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작가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한국의 풍습과 산하, 그리고 인정을 서정적인 문장으로 그려낸다. 작가의 자서전적인 형식의 소설로, 모두 24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수암'에서 '목적지로'에 이르기까지 각장의 제목이 붙어 있다. 이 작품은 장편의 1부에 해당하는 것이고, 2부 <유럽에서의 상봉>은 발견되지 않았다.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읽히게 되는 소년소녀의 성장소설로써 어린 시절을 담은 한 장의 흑백사진으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미륵과 어머니를 갈라놓은 압록강은 기쁨과 슬픔, 추억과 눈물을 모두 담고 흐르는 역사의 강이며 조국을 상징하는 강이며 돌아가야 할 우리들 고향의 강이다. 작가는 뮌헨시내를 흐르고 있는 이자르강을 보면서 마침내 흐르고 흘러 고향의 바다에 이르게 되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때문에 강은 그에게 있어 고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이 미륵의 담담한 회상은 바로 어머니 자신의 초월적 감성과 닮아있다. 그것은 어머니가 경도했던 불교적 세계관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생과 사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방념의 태도는 불교계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모습이다. 회색 도포를 즐겨 입었던 이 미륵에게서 독일 사람들은 조용한 동양의 신비와 초연함을 느꼈다고 한다. 압록강을 이 미륵은 한번 건넌 이후 다시는 건너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늘 압록강이 흐르고 있었다. 나중에 『그래도 압록강은 흐른다』고 다시 한번 압록강을 책제목으로 잡은 것은 제목의 빈곤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고시》에 “호마(胡馬)는 언제나 북쪽 바람을 향해 서고, 남쪽 월(越)나라에서 온 새는 나무에 앉아도 남쪽으로 향한 가지를 골라 앉는다.”고 했다.
 이미륵은 식민지 상황에 있는 내 조국의 서정적인 배경과 문화, 고유한 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를 서정적 문체로 보여주고 있었다. 또 동양적 정신세계와 불교사상, 효 사상, “인간의 숭고함을 지향하는 나라이다.” 라는 내용을 조용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이 소설의 초점은 그가 ‘세계 속에서 알리고 싶은 우리 조국’에 있다. 이미륵은 강대국이 침략한 우리 조국이 어떻게 파괴가 되고 어떠한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서술하고 약소국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지 고도한 방법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 작품은 독일 문단의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영문, 국문으로 번역되었다. 독일에서 최우수 독문 소설로 선정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독점하면서 전후 독일문단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작품이다. 동양문화의 핵심이 되는 윤리와 도덕을 기반으로 자연인을 추구하면서, 동서양의 만남을 작가 자신 속에서 완성해 보려고 시도한 것이다.
 1946년 독일 뮌헨 피퍼 출판사가 출판한 이 소설은 제2차세계대전 직후 ‘독일어로 씌어진 가장 빼어난 문장’이란 평가를 들으며 독일의 중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던 바로 그 화제의 작품이다. 독일의 신문, 잡지 등에 100여 차례의 서평이 실리고 영어와 프랑스어로도 번역되기도 한 문제 작품이다.
 이미륵이 이 나라를 떠날 때 택했던 북한에서 중국, 러시아를 경유한 '유럽행'은 바로 여행기행문이다. 자신이 알고 있었고 들었던 중국문화에 대한 지식은 물론이고 새로운 문명의 나라에 대한 지적 호기심과 동경도 잔잔하게 그리고 있다.
 『압록강은 흐른다』는 1900년대 초반 이미륵의 고향인 황해도 해주에서 사촌 수암, 어머니, 누이, 친구 등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가정과 학교 생활, 구식 교육과 신식 교육, 일본 제국의 침략과 탄압 정치, 압록강을 건너 상해를 거쳐 유럽에 도착하여 독일 생활이 시작되는 이야기다. 한국의 전통과 역사를 1인칭 소설로써 신문명이 지배하는 당시 유럽에 소개해 조국과 고향의 이야기를 외국의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데 성공한 셈이다. 소박하고 간결한 어린 시절의 묘사는 국경과 문화의 차이를 뛰어넘어 인간 본성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거미줄 잠자리채를 만들어 사촌형 수암과 함께 들과 산으로 뛰던 일, 장롱 위의 꿀을 훔쳐먹다  벌 받고, 연을 만든다며 귀한 한지를 마구 자르다 훈장선생님에게 회초리를 맞던 일, 아버지와 얼떨결에 겸상해 술까지 마신 이야기. 엄하지만 따뜻한 아버지와 투박한 몸매 속에 모성을 숨긴 어머니가 있고, 얄밉지만 은근한 누나와 주먹다짐하며 우정을 쌓은 동무가 있는 옛 시골 마을 인심, 사촌들과 싸우며 놀던 기억 등 토속적인 한국 이야기는 한국에 대한 세계인의 이해를 깊게 하고 있다.

  사촌 수암과 함께 한문과 서예를 배우고, 장난도 치면서 자란 '나'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신학문'을 배우게 된다. 신식 중학에 입학한 '나'는 서양식 교육을 받다가 건강이 나빠져 학교를 그만둔다. 독학으로 의학 전문학교에 입학하게 되지만, 곧 3.1 운동이 터지고, 항일운동을 주도한 '나'는 유럽으로 향한다.
유려하고 간결한 필치로 구한말의 풍경과 우리 산하의 아름다움을 아로새겼다. 새 것과 옛 것이 부딪치던 시절을 살아가던 한 소년의 담백한 성장기를 읽으면서, 새 것과 옛 것이 부딪쳤던 시절의 사람들의 모습과 아름다운 우리 산하, 재미있는 세시풍속 등을 간접경험할 수 있다.


"한 잔 더 마셔도 되나요?"
나는 아버지에게 여쭈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어머니는 소리를 지르며 잔을 빼았으셨다.
"너무 그러지 마시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부탁하셨다.
"한두 잔 정도의 술은 해롭지 않아요.
내가 이렇게 외로운데 친구가 있어야 하지 않겠소."
"어쨌든 오늘뿐이에요!"
이렇게 말씀하시고 어머니는 잔을 채우셨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세 번째 잔을 비웠다.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현명하시고 이토록 재미난 얘기를
할 줄 아는 아버지의 친구가 되다니!
"아버지, 시인에게 술이 얼마나 필요한지 어머니가 아시면 참 좋을 텐데요."
"그래, 맞았어."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옆에서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보셨다.
어머니가 놀라시는건지, 아니면 즐거워 웃고 계시는 건지,
나는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상관없었다.
정말 상관없었다. 달빛은 너무도 밝았고, 살구꽃은 향기를 풍겼다.
나는 술상에 마주 앉아서 아버지의 친구가 된 것이었다.
- 소설 본문 중에서

 이미륵을 통하여 표현된 고국의 아름답고 투명한 가족의 사랑도 가슴을 친다. 이 시대의 가족 해체의 과정이 급속도로 진행되는 때에 그의 소설은 하나의 경이다.
 어린 아들의 신학문을 배우는 과정을 통하여 미지의 세계에 사로잡히는 아버지와  신학문과 서양문물을 배척하던 시대에 새로운 지식을 받아 드리며 순수한 탐구열에 들뜬 주인공과 친구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아름다운 가족들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수채화풍의 묘사와 한국의 전래 놀이와 관습들이 거부감 없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다.
미륵은 3·1운동에 가담했다가 신변의 위협을 느껴 압록강을 건넌다. 그가 떠나던 날 어머니는 말한다. “네가 돌아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겠다. 세월은 빨리 가느니라. 비록 우리가 다시 만나지 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너무 서러워 마라. 너는 나에게 정말 많은 기쁨을 주었다. 자 얘야! 이젠 네 길을 가거라!”

그토록 담담하게 시간의 축을 끼고 순서대로 행로를 밝히며 일기장과 기행문으로 첨가되던 소설도 찡하게 울리는 슬픔으로 끝을 맺는다. “먼 고향에서 전해온 소식을 받았다. 큰 누님이 쓴 편지였다. 지난 가을에 어머님이 며칠동안 앓으시다가 세상을 떠나셨다는 사연이었다.”
이 작품은 “동양의 긍지와 정신을 살려 일제에 강점된 한국의 현실을 묘사했다”는 평을 받으며 독일 고등학교와 한국 고등학교(문학), 한국 초등학교(읽기·논술) 교과서에 소개된 명저(名著)다. 중국역사와 인도역사를 삽입하여 폭 넒은 동양고전에 대한 식견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다. 짧고 강렬한 스타일의 독특한 문체로도 이목을 끈 이 박사의 ‘압록강’은 나오자마자 100편에 달하는 서평과 문체평을 받으며 독일 문학계의 주목을 끌었다. 문단에서의 위치를 확고히 한 이미륵 박사는, 독자들의 열렬한 간청을 받아들여 ‘압록강’ 속편 2부와 3부를 탈고했다. 하지만 1950년 이 박사가 지병으로 타계하면서 안타깝게도 원고의 대부분이 분실되고 말았다.

“수암-그는 '나'의 사촌이다. '나'는 어린 시절 대부분을 그와 놀았다. 그는 글공부에는 취미가 없었다. 당시 아버지는 우리에게 어려운 한문을 일찍부터 가르치고 있었다.” 소설 서두에 보여주는 직설적이지만 흥미 있는 소설전개에 주목한다.
 개화의 물결이 거세게 일던 구한말, '나'는 사촌 형 수암과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아버지로부터 천자문과 한시 등을 배운다. 이어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다가, 아버지의 배려로 개화의 물결과 함께 세워진 신식 학교에서 서양식의 교육을 받는다. 그러던 중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몸이 좋지 않던 아버지는 나와 옥계천에 다녀온 후, 숨을 거둔다. 힘겹게 신식 학문을 익히던 나는 어머니의 권유로 신학문에 대한 공부를 중단한다.
잠시 휴식을 하면서 소작인들이 살던 바닷가 근처 송림에서 지내던 '나'는 구라파(유럽)에 대한 열정이 솟아 작별 편지를 남기고는 마을을 떠난다. 국경 도시에 닿은 '나'는 만주행 기차표를 끊었으나, 결국은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마을로 되돌아온다. 그 후 '나'는 친구들의 도움과 통신 강의 등으로 공부를 계속하여 서울의 의학 전문학교에 입학한다. 3학년이 되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조국의 슬픈 현실에 울분을 품은 '나'는 동료 학생들과 함께 인쇄물을 뿌리고 만세를 부르는 등 항일 운동에 적극 참여한다. 그 일로 '나'는 일제의 추적을 받게 되자 학교를 나와 고향 마을로 돌아오는데, 자식이 걱정된 어머니는 외국으로 떠날 것을 명한다. 결국 '나'는 유럽으로 가기 위해 압록강을 건너 중국 상하이로 망명길에 오른다.
'나'는 상하이에서 출국 허가가 나오길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다가, 해를 넘기고서야 겨우 증명서를 얻어 구라파행 배에 오른다. 배 안에서 여러 나라 사람들과 지내다 마침내 닿은 구라파, '나'는 프랑스 파리를 거쳐 독일에 뿌리를 내리고 공부를 시작한다. 그리고는 멀리 고향으로부터 큰누나가 쓴 첫 소식을 받았는데, 거기엔 지난 가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작가의 실명인 '미륵'을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독자들이 소설이라기보다는 자서전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사건의 무게나 크기가 엇비슷한 여러 개의 사건을 차례대로 늘어놓고, 그 사건을 통해 주인공 '미륵'이 아이에서 청년으로 커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성장 소설의 특징이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작가는 먼저 '나'의 고향인 황해도 해주의 풍경을 담는 데서 출발하여, 사촌 형 수암, 어머니, 누이 등과 함께 보낸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다.  굴뚝을 만들어 연기놀이를 하고 잠자리채를 만들어 잠자리를 잡고 풍뎅이를 잡아 뱅글뱅글 돌게 하는 놀이 등 뒤뜰의 일상을 칼라 사진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원형으로 지어진 본채와 중간 뜰, 우물 뜰, 왼쪽 뜰을 통한 규모 큰 조선시대의 집을 묘사하여 그 속에 살던 따뜻하고 순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다. 장롱 위의 꿀을 훔쳐먹다 들킨 일이며 붓글씨 배우기와 천자문 쓰기 등을 하며 먹동으로 놀림을 당하며 사촌들과 싸우며 놀던 기억 같은 토속적이고 한국적 냄새가 짙게 나는 사건들이 전개된다. 광대놀이 연극에서 승려가 아름다운 여자에게 반하고 작별장면에서 승려의 격정적이고 슬픈 탈춤을 소개하고 마을 종루에서 저녁마다 28번 울리던 종소리와 고을 원의 저녁인사로 들리던 삼문 위의 음악소리, 사촌들과 함께 산 대가족제도 등 시골 양반 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나'의 유년기 체험을 자본주의 문명이 지배하는 당시 유럽에 소개함으로써 서구인들이 조선의 문화와 전통, 역사에 대한 깊은 흥미를 갖게 한다.
 아이 낳기를 소원하는 부인을 위하여 빌어주는 여자인 대원(代願)어머니를 소개하고 있다. 점장이나 무당보다 훨씬 더 높은 지위에 있었고 인생의 저열한 일에는 관계하지 않는 하느님, 부처님, 보살의 이름에만 빈 축수(祝手)하는 할머니는 어머니와 함께 집에 와서 49일 동안 묵으면서 부처님의 제자인 미륵불에게 축원을 드렸고 그에 따라 작가 자신의 이름은 후에 미륵이라고 했다는 유래를 밝히고 있다. 한국적인 신앙을 보여주는 빌기의 한 형태이다.아버지의 병환에 거북점은 고발과 비판의 형태로 묘사되나 대원어머니에게는 감사를 한다. 할머니의 기도 때문에 이 집에 태어나서 많은 가족을 만나 감사하다는 긍정적인 민속신앙의 일단을 볼 수 있다.

 농부들은 집집마다 좋은 낚시 도구가 있었지만 낚시질을 하지 않고 어망으로만 생선을 잡았다. 그들은 만 밖에서 소위 '큰소'라고 부르는 근처에 어망을 쳤다. 그 어획물은 조그마한 공미리가 아니고 가자미와 넙치, 준치 또는 길고 긴 갈치 그런 큰 생선들이었다. 나는 어떻게 그물을 치며 또 어떻게 고기를 잡는지 아직까지 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나는 그물을 치러 가자는 권고에 거절하기 않고 즐겨 따라 나섰다. 마을 사람들은 밤의 썰물이 일 때를 골랐기 때문에 내 기분은 그리 좋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밤에 제일 좋은 고기가 그물에 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 소설 본문 중에서

 이쯤에 이르면 이 소설은 현대 한국인이 잃어 가고 있는 우리의 풍속과 유산에 대한 하나의 전형이며 보고이기도 하다.

 사월초파일의 연등행사를 통하여 불교를 소개한다. 죽은 사람의 혼을 위한 제를 묘사하면서 밤을 새우고 아침이 밝아 올 때까지 불공은 계속된다. 백여명의 승려와 상복을 입은 상주들이 원을 그리며 절마당을 돌며 “아미타불”를 외우는 광경을  통하여 불교를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있다.  김삿갓의 이야기를 통하여 방랑시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김삿갓의 처지와  바둑두기, 술 마시기, 옥계천 목욕을 함께 하며 시조창을 하는 아버지와 친구가 되어 가는 과정을 필름처럼 회상하고 있다. 바둑이 인간에 속한 놀이가 아니라 선계에 내려와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소일하던 신선에게 속한 놀이라는 것을 아버지의 말을 통하여 알리고 있다. “천천히 소리가 울리는 동안에는 기다려라”는 바둑을 두는 수에 이르면 작가의 뛰어난 관찰을 만난다.
 공자가 가르치는 윤리와 도덕이 없는 유럽은 오랑캐의 나라라는 것과 상전과 종이 없는 정직한 유럽과 어딘지 아름답고 부드럽고 훌륭한 중국문화에 대한 선호, 일본보다 우월한 우리문화를 역설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신식학교에서 일본말을 배우며 한국민족이 독자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는 민족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일본제국에 조공을 바치는 변경민족집단이라고 역사는 가르쳤다는 사실도 숨기지 않고 폭로하고 있다.
송림마을의 아름답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의 풍경과 아무 장식도 없이 점토벽으로 된 방과 대패질도 하지않은 생나무로 짜놓은 나직한 책상에 대한 그리움을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는 작가의 시선에서 이미 고향의식으로 포근하게 담기고 있는 소설의 설정과  시간적인 풀이들을 읽을 수 있다. 특히 송림마을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농촌풍경을 그림처럼 재현하였고 농번기가 끝난 농부들이 모여서 돌아가며 소설낭독을 하던 장면과 가을날의 농사 거두는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어떻게 기억 속에서 그렇게 세밀하게 고향을 글로써 복원시킬 수 있었는지 경이롭다. 조국의 문화와 산하에 바치는 헌사다.
 이 소설의 압권은 고향 묘사에 있다.
주인공 나는 새문명이 있는 외국으로 공부하려는 마음으로 만주를 거쳐 심양으로 가는 기차표를 구입했으나 역무원의 충고로 다시 표를 물리고 송림으로 돌아온다. 떠난지 사흘만이었다.
왜놈들이 옛날묘를 마구 파헤치며 죽은 자에게 공양된 고귀한 도자기를 마구 훔쳐내는 현장을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다. 수 많은 묘가 파헤쳐져 하늘을 쳐다보고 있지 않은 산이 없었고 수천년전의 조상들의 해골이 산정의 햇볕을 쬐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조국의 고향마을을 회상형식을 빌어 그들의 만행을 준엄하게 비판하고 있다.
 또한 3.1운동에 대한 당위성과 계층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시위운동에 참가하며 마지막에는 한국인 관리들까지도 참여하는 우리 민족이 분연하게 일어난 정체성을 묘사하고 있다.  시위운동에 참가한 나는 교복을 벗고 고향으로 내려왔으나 어머니는 경계가 아직도 허술한 압록강 상류에서 북쪽으로 도망 칠 것을 권하고 나는 어머니의 당당하고도 미래를 예언하는 격려의 말을 듣고 어머니와 고향을 이별한다. 그 때 어머니가 주인공에게 들려준 말은 이 땅의 훌륭한 아들을 강하게 만들어간 어머니의 모성적인 리더쉽이며 가정교육의 전법이며 미래를 바라 본 한국 어머니의 위대한 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3.1운동의 당위성과 전민족이 봉기하는 과정을 표현하고 왜놈들이 옛날의 조상묘를 마구 파헤치고 죽은자에게 공양된 고귀한 도자기를 마구 훔쳐낸 현장을 고발한 장면은 압권이다.
“수 많은 묘가 파헤쳐져 하늘을 쳐다보고 있지 않은 산이 없었다. 수천년 전의 조상들의 해골이 산정의 햇볕을 쬐며 여기저기에 흩어져 뒹굴었다.” 노련한 촬영기사처럼 사실적으로 보여주기만 하는 작가는 바둑알이 울리는 순간을 기다리며 독자들의 심금을 치고 있는 것이다.
 소설구성에 있어 어머니의 등장은 소설의 전환점이 되고 있다. 주인공 나가 서울로 떠날 때 어머니는 과거를 너무 생각하지 말고 언제나 네 온화한 성품을 잘 간직해야 한다고 말한다. 압록강으로 탈출하는 주인공에게 어머니는 다음과 같은 말로 아들에게 용기를 주고 화두같은 이별의 장을 만든다.

“너는 종종 용기를 잃는 일이 있었으나 그래도 네 길에 너는 충실했었다.
나는 너를 크게 믿는다. 그래 용기를 내거라. 너는 국경을 쉽게 넘고 결국 유럽에도 갈 것이다. 이 어미 걱정은 전혀 하지 말아라. 나는 네가 다시 돌아 올때까지 조용히 기다리겠다. 세월은 빨리 가느니라. 비록 우리들이 다시 만나지 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너무 서러워 말아라. 너는 내 생애에 있어서 나에게 정말 많은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자, 얘야! 이젠 너 혼자서 네 길을 가거라!“


이어 펼쳐지는 청년기 이후의 체험에는 조선인으로서 외부 세계를 접하면서 느끼는 충격과 호기심 등이 흥미롭게 나타나 있다. 학교에서의 신식 교육과 새로운 학문에 눈뜨게 되는 과정,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탄압, 이에 대한 조선인의 저항을 펼쳐 보이고, '나'가 압록강을 건너 상하이를 거쳐 유럽에 도착하여 독일 생활을 시작하는 이야기로 작품을 마무리하고 있다.  요동평야의 관활함,  글에서만 읽던 만리장성과 양자강을 보는 만주, 심양, 천진, 남경의 묘사는 여행수필이다. 운하와 수양버들의 도시 남경을 적확하게 표현함 중국 풍물의 관찰이 돋보인다. 운하에 걸쳐 있는 나무다리, 날신하게 치켜 올라간 지붕들, 가느다란 창살이 달린 집이 물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기행문의 자료를 작가는 일기형식을 빌어 메모해 두었다가 이 소설에서 재구성시키고 있었던 것 같다.
 100년전의 도시 상해도 이 소설에서 나타난다. “허허 벌판, 어디를 가나 끝이 없었다”는 상해체류기가 나오고 중국여권으로 배를 타고 선상에서 사이공, 싱가포르, 콜롬보, 아프리카 지부티, 홍해, 스에즈운하, 마르세이유항, 리옹, 디종, 스트라스부르키로 이어지는 항해중 선상의 일상과 외국인의 모습, 그리고 항구도시보다 새로운 세계를 그리고 있다. 드디어 뮌헨에 도착하여 일상이 전개되는 과정 속에 그의 고향의식은 줄기차게 흐르고 있었다.
 지나치던 남의 집 정원에 달린 빨간 꽈리를 보며 고향집 뒷마당의 꽈리인듯 고햐을 생각하고 흔눈이 내릴 때 고향마을과 송림만 위로 휘몰아쳐 내리던 바로 그 눈과 같아 행복했다는 주인공은 “지금 어머니는 무엇을 하고 계실까. 깨어나 계실까.슬쓸한 고독에 잠겨 텅빈 뜰안에 홀로 앉아 계실까” 하며 어머니를 생각하고 가끔 강을 따라가다가 버드나무 아래에 있는 벤취에 앉아 고향을 생각한다. 이 강은 뮌헨 시가지를 흐르는 이자르강이다.
“유유히 흐르는 이 강을 보면 내 마음은 기뻤다, 나는 이 물이 이렇게 계속 흐르고 흘러서 언젠가는 한국의 서해안에, 어저면 연평도에, 아니면 외로운 송림포구에 닿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압록강은 흐른다』의 초판이 출판 된 때가 1946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년이 지난해이다. 패전국의 독일인은 전쟁의 잔혹함에 몸서리치며, 전쟁으로 희생된 가족과 친척 그리고 이웃을 잃은 슬픔을 극복하며 폐허가 된 독일을 복구해야 하는 와중에 있었다.
 이미륵의 신선하고 기교부리지 않은 읽기 쉬운 문체로 이어지는 소설은  먼 극동아시아의 한국에서 일어난 일들을 묘사하고 있다. 글 속의 이국적인 세계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의 세계처럼, 그 당시 독일인의 상처받은 영혼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손길과 같은 것이었다. 그의 글을 읽어 내려가면 독자는 어느덧 여려 폭의 한국 그림 책 속을 산책하듯이 상상의 세계로 내려간다.
 한국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다채로운 사건을 작품에 담음으로써 독일 독자들이 우리의 정신세계를 가까이 이해하게 만들고 있다. 이는 단순히 지구 건너 편, '조선'이라는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국경과 문화의 차이를 뛰어넘어 인간의 참모습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보편성을 지닌 작품이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외세의 침략에 의한 개방, 이어진 나라의 주권 상실이라는 슬프고 아픈 역사를 언뜻언뜻 보여주면서도, 한탄이나 분노만을 되풀이해 강조하지 않고, 이야기를 간결하게 전개시키고 있어 속도감, 경쾌함이 느껴진다. 게다가 개화기에 신학문을 배우면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불태우며 한 발씩 가까이 다가서는 주인공의 성장 과정은 읽는 이의 마음을 들뜨게까지 한다. 일제에 의해 우리 것들이 뿌리 뽑혀 사라지는 슬픔과 새로운 학문에 다가서는 설렘이 가로, 세로로 얽혀, 마침내 세상에 혼자 맞서 우뚝 서는 한 청년을 만들어가는 데에서 이 소설은 큰 감동이 있다.
 압록강을 건너고 나서 다시 뒤돌아 본 압록강의 풍광은 더욱 아름답다. 뒤돌아 보는 것은 모든 것이 그리운 것인가. 고도로 차분하게 압축된 문장은 일체의 설명조차 생략한다. 강은 그냥 강이 아니라 고향의 산하를 의미하는 소설의 중요한 포인트를 의미한다.
어머니와의 마지막 이별 장면,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접하는 순간의 묘사는 절제되고 객관화된 이성을 읽지만 서정적인 자락에는 감동의 물결이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생략의 글쓰기, 혹은 전경화의 글쓰기를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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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박 월 선, 미륵,『압록강은 흐른다』와 다문화 관계 찾기, 다문화 사회 속 아동문학의 역할,

    서울 교육대학교, 2008년 4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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