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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륵 소설에 나타난 고향의식연구①

문학평론가. 부산문인협회 회장 정영자 2011.10.11 12:31 조회 수 : 5442

이미륵 소설에 나타난 고향의식연구

 

정영자 (문학평론가. 부산문인협회 회장)

 

1. 머리말

 

1946년 발표돼 전후 독일 문단을 놀라게 하였던 이미륵의 자전적 소설『압록강은 흐른다』는 한국의 정신문화를 미려한 독일어로 풀어낸 수작이다.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과 한국인의 심성과 삶을 독일 사회에 처음 알린 이 소설은 당시 독일 문단의 열광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의 생전에 나온 자전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는 1946년 독일에서 출판되어 독일 문단의 극찬을 받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당시 이 작품에 대한 독일 신문·잡지의 서평이 1백여 편에 이르렀고, 한 때 최우수 독문학 작품으로 뽑혔으며, 지금도 이 소설의 발췌문은 바이에른 주와 헤센 주의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읽혀지고 있다.

이미륵 탄생 112주년, 타계 61주년이 되는 때이다. 황해도 해주에서의 유년 시절의 기억을 중심으로 조국의 문화와 생활을 간결한 문체로 아름답게 형상화한 이미륵(李彌勒 1899∼1950) 의『압록강은 흐른다』는 독일인들에게 동양정신의 정수를 보여주면서 한국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는 독일어로 써진 장편 소설로, 1946년 독일 피퍼 출판사에서 전후 최초의 출판물로 간행되었으며, 초판이 곧 매진되어 1950년에 재판이 나오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누린 작품이다. 유려하고 간결한 독일어로 한국의 풍습과 산하(山河), 그리고 인정(人情)을 서정적인 필치로 그린 이 작품은 독일인으로 하여금 한국인의 깊은 정신을 흠모하게끔 하였다. 또한, 수개국에서 영어로 번역되었고, 독일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1959년 전혜린에 의해 우리말로 번역 되었고, 이 작품의 2부로 생각되는 『그래도 압록강은 흐른다』는 1973년 정규화교수에 의해서 발견되었으며 그에 의하여 1989년 초판, 1998년 『압록강은 흐른다』 번역본 재판을 내면서 「무던이」, 「실종자」, 「탈출기」, 『그래도 압록강은 흐른다』 등을 소개하고 이미륵의 작품론과 부록으로써 그의 전 작품 발표에 관한 것과 연보를 상세하게 소개하였다.

 

이미륵은 이미 “가장 한국적이고 가장 세계적인 작가”, “세계간의 다리를 놓은 온유한 중재자”②  등으로 평가 받고 있는 작가다.

지금까지 50년이나 우리나라의 독자에게도 꾸준하게 읽히며 호평 받고 있는 이유는 우리들이 잃어가고 있는 추억이요 역사며 살아 있는 우리들의 생활이었기 때문이며 우아하게 나타나고 있는 따뜻한 인간애의 순수함과 고결함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애잔함과 그리움, 고독의 저변과 함께 부모 아들간의 따뜻하고 안락하며 뿌듯한 자애와 흔쾌한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기대와 사랑이 있고 시가와 역사를 논하는 도도한 논리와 아버지와 친구가 되었다는 표현이 감동적이다.

독일의 친구들이 불러주는 한국어 애국가 속에 가진 쓸쓸한 죽음이었지만 300여명의 조문객이 모인 성대한 장례식을 치러주고 묘소를 잡아 한동안 가꾸어 온 것도 독일의 지인들이었다. 이미륵 박사가 기거한 옛 집터의 독일인 집주인은 기념조형물과 동판을 통해 한국의 옛 문인을 기념하고 있다. 그가 이국타향에서 그와 같은 대우를 받았던 것도 가정교육의 따뜻함이 가져다 준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과 신뢰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독일문단의 평가 속에 있는 이미륵의 작품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하고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그가 남긴 우리의 유산을 재조명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미륵연구는 그 동안 상당한 관심과 열정이 있었다. 최근에 오면서 국력신장과 함께 재외 한국인들의 문학적 성과에 관한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고무적이다.

 

단순한 한 개인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구한말에서 일제 침략기에 이르는 격동기의 우리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서당에서 구식 교육을 받다가 신식학교에서 받는 충격과 혼란스러움, 좌절, 도전, 의학도로서의 생활, 그리고 3.1운동, 일제에 붙잡히지 않기 위해서 압록강을 넘는 과정이 한 개인의 경험이 아니라 우리 역사의 한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이미륵은 3.1운동 직후 압록강을 넘은 뒤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독일에 도착해 독일에서 공부하고 글을 쓰다 1950년 세상을 뜰 때까지 독일에서 지냈다. 물론 모든 글도 독일어로 썼다. 이 작품에 옮긴이가 필요했던 까닭도 여기에 있다.

지난 1990년 건국훈장을 추서 받은 독립지사 이의경은 미륵의 본명이다. 이박사의 작품 세계는 한국의 후학들에 의해 재조명됐고, 책들도 최근 다시 출간되어 재판을 거듭하고 있다. 『압록강은 흐른다』는 청주시에서 교육 도시답게 '책 읽는 청주 -한 도시 한 책 읽기'를 시작하기도 하였다. 다양한 연령과 계층에서 쉽게 읽을 수 있고, 글로벌한 문화가 혼재한 가운데 한국적인의 정서를 일깨워 줄 수 있으며, 같은 연령의 청소년에게는 성숙과 독립성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이미륵이 1934년 독일의 유명신문에 기고한 '한국과 한국인'이란 글에서는 한국문화의 배경, 당시의 정치적 형세와 일본의 침략정책을 비판하면서 조국의 독립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활동보다 그가 이룩한 진정한 공로는 독문학 작품들을 통해 한국과 동양 사상, 우리의 정신문화를 서유럽에 전파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폭 넓은 한국문학의 범주 속에 우리는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었던 우리의 향수와 전통과 따뜻한 인간애와 우아한 삶의 태도와 은은하게 퍼져가는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옛놀이를 즐기며 글을 읽고 정진하던 청소년들의 꾸준한 학업과 독립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새로운 문명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도전하는 젊은이들의 모습 속에서 신선한 울림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독일에서 만큼 국내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압록강은 흐른다』는 신식 교육과 구식 교육이 교차하던 19세기 초의 한국에서 일어난 전통과 현대의 충돌, 그에 따른 문화적 충격, 조국의 상실 등을 어린이들의 눈을 통해 담백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유교적인 정취와 해주 지방의 풍토에 대한 묘사가 풋풋한 향기를 자아내고 있다. 다섯 살 어린이의 시각에서 출발하여 20세의 청년이 되면서 일어나는 조용한 변화는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 국내적인 것과 국외적인 것이 조밀하게 짜여 있다.

한국문학의 정의는 한국인의 삶을 역사상의 각 시기에서 그 시대적 특수성에 상응하는 표현방법을 통해 형상적으로 창조한 문학이라고 정의 할 수 있다. 한국문학의 주체는 한국인이며, 매체적 조건인 표현 언어는 한국말이다. 그러나 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하면 외국어나 한자로 표기된 문학작품도 포함될 수 있다. 비록 한국어는 아니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외국어로 한국인의 사상과 감정을 나타낼 때 이제는 범 한국문학의 영역을 넓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사량과 김달수의 작품은 일어로 , 강용흘의 『초당』, 김은국의 『순교자』, 김용익의 『꽃신』은 영어로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는 독일어로 표기되었다.

재미교표 강용흘의 『초당』은 저자가 함경도에서 성장한 후 미국으로 떠나게 될 때까지의 성장과정과 주변 환경을 담은 자전적 장편소설이다. 소년 한청파를 주인공으로 동양의 선비정신을 비롯해 한국인의 얼, 역사, 한일합방의 경위, 개화기 지식인의 고뇌, 3.1운동 등을 그렸다.

소설의 제목으로 두 번이나 사용한 ‘압록강’은 고향과 조국, 어머니를 상징한다. 때문에 그의 모든 것은 고향의식의 담담함이 독일의 이자르강에서 압록강까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20년을 살았던 조국을 떠나 30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아왔던 독일이었지만 그에게 남겨진 작품의 세계는 그가 보고 느끼고 깨달았던 유년과 젊은 시절에 놓여있었던 조국의 산하이었으며 그리운 가족과 친구들이었다. 그의 향수가 우아하게 순수하게 낮은 톤으로 울리는 소설의 세계는 그리움의 원형이고 복원이며 그 자신의 위로였다. 유럽세계에 던지는 한국인의 따뜻한 가족애요 일제의 고통 속에 새로움에 도전하는 한 사나이의 성장과정을 통한 세계화의 전형이다.

본 논제는 이미륵 소설에 나타난 고향의식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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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정규화, 이미륵, 가장 한국적이고 가장 세계적인 작가, 무던이, 계수나무, 2001.p.143

② 2006. 9.22. 독일 일간신문 뮌흐너 메르쿠어 - 마틴 슐러루스 쓴기사. 이미륵을 기리는 강연의 밤. 

   이미륵 홈페이지 참고 (홈페이지에 기사 올린 날짜 2006.10.11. 방명록 - 글번호 95)

이미륵박사가 19년을 살았던 그의 독지가였던 자일러교수의 독일 그래펠핑시 아킬린다 슈트라세 46번지의 집은 지금 입펜박사가

   살면서 신축주택을 지었고 정원에 다음과 같은 기념비가 남아 있다고 한다.

  “낯선 곳에서 찾은 고향, 이미륵(1899-1950) 한국작가 이곳에서 살았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읽기 교과서 6학년 2학기, “옥계천에서”에  <압록강은 흐른다>실려있다.

   정규화교수의 연구, 최명표문학평론가의 이미륵의 소년소설연구, 한독협회는 1999년에 이미륵상을 제정하였다.

   1920년 독일에 망명하여 30년간 동서 문화의 가교 역할을 했던 이미륵 박사의 업적을 기려 제정된 상으로, 2년마다 한·독

   문화교류에 지대한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고 있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일찍 생을 마감한 이미륵. 자칫 영원이 잊혀질법했던 그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 부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여러 사람의 열정이 있었다. 이미륵이라는 작가는 독일 유학 중에 그를 알고 있던 사람들과의 만남과 그의 책을 읽은

   전혜린(번역가,수필가)씨가 1955년 번역을 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고 전 성신여대 독문과 정규화 교수가 지난 1965년, 독일의

   뮌헨대학에서 유학 중이던 때 학교 앞 고서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이미륵’의 이름을 듣게 된다. 그로부터 10여년, 정씨는 독일

   곳곳을 찾아다니며 이미륵과 관련된 자료와 정보를 수집한다. 이미륵과 관계하였던 70여명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에 관한 유고

   작품과 관련 유품을 수집하며 연구하고 소설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아동도서로 확대 하는 등의 노력에 의한 이미륵소설의 발굴이

   가능한 것이었다. 이미륵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찾아내 유고집에 담았다. 그는 이미륵이 남긴 14편의 수필, 7편의 논문, 59통의

   편지 등 다양한 사료를 발굴해 국내에 작가 이미륵의 존재를 알리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된다. 뮌헨에서 식료품상을 하고

   있는 송준근씨가 묘지 관리를 하며 그를 알리는데 열성을 다였기에 가능하였다.

뉴시스.200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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