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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륵 소설에 나타난 고향의식연구③

문학평론가. 부산문인협회 회장 정영자 2011.11.17 09:13 조회 수 : 7586

이미륵 소설에 나타난 고향의식연구

 

정영자 (문학평론가. 부산문인협회 회장)

 

3. 문학에 있어서 고향은 무엇을 말 하는가

 

“이미륵이 쌀밥을 먹고 싶어하니 쌀 좀 부쳐달라.”

그의 와병 소식을 전해온 한 현지인의 편지에 이 말이 씌어 있었다.

그는 독일에서 나름대로 성공한 삶을 누렸다. 하지만 독일 빵으로 30년 가까이 살아온 그는 죽기 전의 마지막 소원이 쌀밥을 먹어보는 것이었다. 그가 쌀을 찾았던 것은 바로 수구초심(首丘初心)이었다.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자기가 살던 고향으로 향하듯이, 그는 고국에 대한 향수를 쌀밥 한 그릇에서 찾으려고 했던 것이다.

박경리 선생이 노후를 보낸 자신의 문학관이 있는 원주대신 거의 40년 넘게 발길 한번 안한 고향에 묻히길 원했다는 것은 수구초심(首丘初心)이다. 선생은 27∼28세 나던 해 고향을 떠난 후 2004년 처음으로 통영땅을 밟았다.

“죽으면 통영 바다가 보이는 곳에 묻히고 싶다”는 뜻을 받아 박경리는 작가의 고향이고 『김약국의 딸들』의 무대인 통영에 뼈를 묻었다. 그도 그가 오래 살았던 강원도 원주는 타향이었으며 가난하고 불행하였지만 태어나서 자란 그 골목과 그 바다 그 산이 있는 고향으로 오고 싶었던 것이다.

미국의 철학가이며 교육학 박사이면서도 작가인 베티 E 영은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그가 자란 미국 중부의 대평원인 아이오와주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회상을 바탕으로 부모님과 6남매가 함께 보낸 소중한 추억의 장이 가득찬 내용이다. 밀과 옥수수밭이 끝없이 펼쳐진 시골에서 가족애, 우정, 자연에 대한 경외감 등 오랜 시절을 잊고 살았던 중요한 것들에 대한 깊은 정회와 그리움이 이는 글을 감동적으로 쓴 글이다. 2차 세계대전 참전 후 돌아와 오붓한 가정을 꾸미고 열정적으로 농장을 일궈갔던 젊은 아버지를 낭만적 분위기로 묘사한 것 등은 가족해체의 현대에 신선한 느낌을 주고 있는 글이다. 제대로의 표현을 다 구사하지 못하여도 끈끈한 가족의 따뜻한 끈과 바탕이 요동치는 가정은 혼탁한 사회의 빛이며, 어두운 시대의 숲이기도 하다.

 

일제 총독부의 언론 통제가 극심했던 1943년에 친일 잡지인 <국민문학>을 통해 일본어로 연재된 김사량의 소설 『태백산맥』(1943.2까지 연재)은 민족의식과 향토에 대한 애정을 박진감 넘치게 그려낸 작품으로, 한말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이 일어난 시기에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산중으로 들어온 한 무리의 화전민. 그들은 험준한 태백산맥의 영봉을 배경으로 민족의 독립과 정의 실현, 그리고 소중한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치열한 투쟁을 전개해 나가는 이야기다.

노향림의 시집『그리움이 없는 사람은 압해도를 볼 수 없네』는 고향 전남 신안군 압해도에 바치는 헌사며 시창작의 원형이며 섬진강시인 김용택의 시의 원천은 섬진강이다. 조정래는 고향 벌교와 지리산을 중심으로 『태백산맥』을 썼다. 태백산맥이라는 제목이 갖는 의미는 한반도의 척추로써 남북으로 잘린 허리를 말하며 곧 민족분단을 한마디로 상징하고 있다.

진정으로 사랑했던 고향에로의 통로는 오직 기억으로만 존재할 뿐 이 세상의 지도로는 돌아갈 수 없다. 아무도 사라져버린 아름다운 시간 속으로, 그 자랑스러우면서도 음울한 전설과 장려한 낙일(落日)도 없이 무너져 내린 영광 속으로 돌아갈 수 없고, 현란하여 몽롱한 유년과 구름처럼 허망히 흘러가 버린 젊은 날의 꿈속으로 돌아갈 수 없으므로. 한때는 열병 같은 희비(喜悲)의 원인이었으되 이제는 똑같은 빛깔로만 떠오르는 지난날의 애증과 낭비된 열정으로는 누구도 돌아갈 수 없으며 강풍에 실이 끊겨 가뭇없이 날려가 버린 연처럼 그리운 날의 옛 노래도 두 번 다시 찾을 길 없으므로. 우리들이야말로 진정한 고향을 가졌던 마지막 세대였지만 미처 우리가 늙어 죽기도 전에 그 고향은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고 이문열은 말하고 있다.

 

토머스 울프의 소설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에서처럼 더 큰 세상을 찾아 나섰던 작가는 결국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타계하고 만다. 그래서 그의 자전적 소설은 더욱 가슴 아프게 울리고 있다.

20세기 초, 미국의 소설가 토마스 울프는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You Can't Go Home Again)이라는 장편 소설에서 15년 만에 돌아 온 고향의 세태를 그리고 있다.

작고한 이모의 장례식에 온 주인공 “웨버”는 그 사이에 대도시로 변모한 고향, 그래서 땅 투기의 광풍에 휘말린 고향을 바라보며 고향 상실자의 한없는 비애와 절망을 느낀다.

문상을 온 친척들은 하나같이 땅값 이야기만 하며, 그로 인하여 인생을 망친 스캔들을 숙덕거리는 데에도 탐닉한다. 절망 속에 빠진 웨버에게 그러나 고향 산천의 황혼은 아름답게 불타면서 일말의 위안을 그에게 던져준다. 황혼만은 옛 모습을 잃지 않고 있는 듯하였다.

이미륵이 타국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도 고향에 대한 찡한 그리움의 복원이 아닐가.

 

짙은 회색 구름, 안개비, 보슬비… 한달에 스무 날은 비가 온다는 뮌헨, 전혜린은 우수에 젖은 문체로 하염없이 독일의 시월만 그리워했다. 그에게 뮌헨은 영원한 향수, 창작욕에 불을 지핀 도시였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가 그 이름을 뒷받침하는 번역서 목록의 일부다. 번역이 아닌 그 자신의 글이라고는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는 하인리히 뵐의 소설 제목을 차용한 산문집이다,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라는 제목으로 묶인 일기가 전부인 전혜린(1934~65)이 단신으로 독일의 뮌헨에 내린 것은 1955년 가을이었다.

전혜린에게 있어 4년간의 슈바빙 시절은 한국에서는 맛보지 못한 본질적 삶의 세례를 받은 시기였으며, 그는 귀국해서 죽기 전까지 `복음'의 전파에 주력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쉽게 인간의 의욕을 꺾는가”를 절감한 그가 언제나 그리워한 그의 도시는 뮌헨이요 슈바빙이었다. 그는 한국에 대한 혐오와 뮌헨을 향한 향수에 시달려야 했다.

미륵의 문학적 산실은 뮌헨이었다. 이 미륵의 작품은 거의 뮌헨에서 집필되었을 뿐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도 뮌헨 땅이었다.

전주한 독일대사관의 문정관이었던 발트 라이프씨는 분단된 한국과 분단된 독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이미륵은 “한국은 동아시아의 독일이고, 독일은 유럽의 한국이다” 라고 말하여 독일의 정치적 상황을 한국의 상황과 함께 인식하며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처연한 심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내면에 늘 그를 사로잡고 있었던 민족혼과 향수는 그로 하여금 끊임없이 글을 쓰게 하였다.”  그가 누워있는 묘지도 뮌헨 근교의 그레펠핑에 있다. 그러나 그가 뮌헨에서 죽도록 표현한 것은 고향의 마을이며 놀이며 그 곳의 친구였으며 은은히 울리던 종소리였고 부모형제, 사촌, 한국적인 종교와 유교적인 담백한 생활의 일상이었다. 때문에 작가에게 있어서 고향은 바로 문학의 원형이며 종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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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1980.

이미륵에 대한 회상, 이미륵저 정규화옮김, 압록강은 흐른다, 범우사, 1989. p.434

③ 정규화, 이미륵, 가장 한국적이고 세계적인 작가, 이미륵저 정규화옮김, 무던이, 계수나무, 2001,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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