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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운동에 참가했다가 일경에 쫓기는 신세가 된 이미륵은 생사를 건 도피의 길을 가는데, 생전 처음으로 중국 땅을 밟는다. 이국 도시에 떨어졌으니 긴장과 두려움이 앞섰을 것이고 알아보아야 할 일도 많았을 텐데 만사를 제쳐두고 강을 찾아 나선다. 곧 압록강 상류에 해당하는 곳에 이른다.


강은 황혼에 반사되어 파란색으로 빤짝이며 언덕 사이의 모래 바닥을 따라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여기의 강폭은 좁아서 반 킬로미터도 되지 못했다. 맞은 편 강둑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거의 알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은 그물을 널고 있었다. 아녀자들은 집 앞에 앉아 저녁을 지으려고 콩을 까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놀이를 하며 뒤엉켜 있었다. 오랜 옛적부터 고향과 이 끝없는 만주 땅을 가르고 있는 국경의 강물은 쉬지않고 흐르고 있었다 (S.169f.).


위 부분만 보면 하루 아침에 조국에서 쫓겨나 남의 나라에서 내일을 알 수 없는 망명자의 신세로 보이지 않는다. 특히 일경을 피해 국경을 넘은 사람의 정치 사회적인 의식은 전혀 표현되지 않고 있다. 물론 이미륵이 한국의 현실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는 나중에 뮌헨대학에서 외국인 학생 회장이 되어 항일(抗日)운동도 했고 1928년엔 벨기에 안트워프시에서 열린 피압박민족대회에서 한국의 독립을 주장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작가로서의 이미륵은 위에서 언급한 시적 사실주의적 작가들처럼 의도적으로 정치나 사회 문제에 관심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이미륵의 작가적 감성은 기본적으로 한국의 전통적인 한과 서정적 미학으로 각인되어 있다. <압록강>은 분명히 이미륵 자신의 개인사와 함께 당시의 지난(持難)한 역사적 현실이 반영되어 있지만 역사 정치적사건이나 그에 따른 인물에 대한 언급은 거의 생략되어 있다.

그런 것은 아마도 앞에서 말한 분위기 잡치는 지저분한 것(Unreinheiten)에 해당되었을 것이다.

 주제로 돌아가 <압록강>에 깔려 있는 강과 물의 상징적 함의(含意)를 살펴보자.

인용한 부분에서 보듯이 목숨을 걸고 건넌 압록강이 생명의 은인이라 그랬는지 이미륵은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압록강을 찾는다. 강가 언덕에 올라 황혼의 물결고 강마을을 바라보며 내면의 평안(平安)을 되찾는다. 여기에 이국의 낯설음은 사라지고 없다. 강에 대한 그의 친화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압록강을 건넌 후 거의 일년이 걸려 독일에 도착한 이미륵은 이방인으로서의 일상 삶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독일어를 배우는 데 애를 먹는다. 자신을 데려다 준 선배(봉근)는 독일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말을 많이 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하고 갔지만 이미륵은 감히 사람을 만나러 나가지 못하고 방 안에서 책만 읽고 있다.

그는 이 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밖에는 어느새 여름이 활짝 펼쳐지고 있었다. 정원과 거리는 꽃으로 덮였고 사방에 향기가 날렸다. 그럼에도 마음이 편치 않아 좀처럼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도대체 언제 이 어려운 언어를 배워 공부를 시작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밖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면 낯선 세계에 와 있다는 느낌이 더욱 심하게 다가왔다. 그래도 밖이 조용해지는 저녁 시간이 되면 가끔 강가로 나가 혼자 산책을 했고 그러다가 버드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강물을 바라보곤 했다. 조용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해 졌다. 나지막한 물소리를 내며 강물은 쉬지 않고 내 앞을 흘러갔다. 저 강물이 계속 흘러가면 언젠가 한번쯤 한국 서해안에 다다르겠지. 그러면 연평도에 그리고 외로운 송림만(松林灣)에도 흘러 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S. 199f.).


강 이름이 나와 있지 않아 이 강이 무슨 강인지 모르지만 (쉬바르짜흐라면 마인강 같은데) 낯선 독일 땅에서 이미륵에게 평화와 안정감을 준 것은 바로 강이었다. 강물은 분리와 단절을 이어주는 평화의 중개자다. 강물은 비자 없이 국경을 넘나들고 언어의 다름도 관습의 차이도 모른다. 그저 길을 따라 쉬지 않고 흘러갈 뿐이다. 그렇게 이미륵은 타는 듯한 향수를 강물에 식혔고 거기서 새로운 힘을 얻곤 했다. 그가 나중에 <압록강>의 2부에 해당하는 작품(미완성)의 제목을 <압록강에서 이자강까지>라고 붙인 만 보아도 강에 대한 그의 친화력이 얼마나 컸던가를 알 수  있다.

 강이나 물에 대한 이미륵의 특별한 서정은 압록강을 건넌 이후에 새삼스레 생긴 것은 아니다. 이미 유년 시절부터 형성된 것이다. 이미륵은 어린 시절 한학과 서당식 공부를 하다가 신식 학교에 들어가는데, 서양식 공부에 도저히 적응하지 못한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휴학시키고 송림만에 있는 시골 마을로 보내 휴양하게 한다. 여기서 이미륵은 심심하면 홀로 바닷가에 나가 낚시를 하는데 고기 잡을 목적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다.


더 괜찮은 고기는 좀처럼 잡을 수 없었다. 농부들이 최고로 치는 도미는 가을 내내 구경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시간만 나면 바닷가로 나가 줄기차게 바위 위에 앉아있었다. 고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었다. 바다의 먼 시야가 너무나 편안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비좁은 만을 벗어난 곳이라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 볼 수 있었다 (S.111f).


바다 위의 너른 시야가 좋아 낚시를 간다니, 마치 산전수전 다 겪은 강태공 같은 도사들의 이야기 같다. 물가에서 정신없이 고기를 쫓아 다녀야 할 13-14살 소년이라기에는 너무나 조숙한 감성이 아닌가? 그런데 먼 시야를 제공하는 이 바다는 단순히 시각적 즐거움만 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륵을 유럽에 대한 동경으로 몰고 간다. 향수(鄕愁)(Heimweh)에 대응되는 미지에 대한 동경(憧憬)(Fernweh)이다. 그 전에 학교에서 종종 들은 유럽은 언제가는 반드시 가 보아야 할 이상적인 세계였다. “멋있는 집과 성 herrliche Häuser und Burgen"이 있고, ”지혜의 오솔길 Pfaden der Weisheit"을 따라 “자연과 우주를 탐구하는 über Natur und Kosmos"곳이었다. 실제로 이미륵은 이 송림만에 있을 때 몰래 집을 나가 유럽으로 간다며 중국 심양행 기차표까지 샀다가 그냥 돌아 온 적도 있다. 그런가 하면 이미륵에게는 미시적인 차원에서 옥계천이라는 아름다운 계곡 시내가 유년의 추억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여름에 여기서 목욕도 하고 아버지와 나무 그늘에 앉아 바둑을 두며 시를 낭송하곤 했다. 이미륵은 이 시내를 몹시도 아름답게 회상하는데, 이미륵 특유의 섬세한 서정적 감성을 형성시킨 토포스다.




문학에서 강이나 물의 상징적 의미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강은 생명의 근원이자 순환의 상징으로 자연의 가장 원형적인 모습이다. 그래서 비극에서 주인공이 강물에 빠져 죽는 것은 근원으로의 회귀니 영원한 안식처로서의 귀향이니 하는 표현으로 해석되곤 한다. 이미륵의 중편 소설 <무던이>도 비슷한 경우다. 우물과 이루지 못할 사랑에 빠진 무던이라는 여인이 결국 스스로 죽음의 길을 갈 때, 강물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죽어서라도 그에게 돌아가고 싶은 회귀의 소망이 강물에 몸을 던지게 했을 거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세계 어디고 농경 문화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곳은 강과 물이 다산(多産)과 풍요라는 경제적 현실을 넘어 생과 사의 경계를 넘는 흐름의 사유를 발전시켰다. 그래서 강과 종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지한다. 고대 이집트 종교의 나일강, 기독교의 요단강, 불교나 힌두교의 갠지스강이 갖는 의미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미륵에게 압록강은 단순히 한반도 북쪽에 흐르고 있는, 자신이 독일로 올 때 건넜던 강 이름 정도가 아니다. 그는 압록강을 건널 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때는 이른 봄 하고도 한 밤 중이다.



우리가 거대한 물 위를 부스럭 거림 하나 없이 조용히 노저어 가는 동안 마치 영원의 세월이 흐른 것 같았다. 강 중간에 왔을 때 먼 데서 몇 발의 총성이 들렸다. 어부는 웃으면서 내게 아무 말 하지 말라고 눈짓했다. 그는 나중에 그것은 철교에서 종종 발사하는 경고 사격에 불과한 것이라고 속삭여 주었다. 반짝이는 물 위의 우리를 결코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S. 168f.)


여기서 강은 미역감는 놀이 공간도 아니고 구워 먹을 고기를 잡는 곳도 아니다. 이 강은 생사의 경계를 짓는 운명의 흐름이고 시간의 아날로기다. 동시에 이 강은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이미륵에게 어떤 외부의 적도 발견해 낼 수 없는 안전한 보호처가 된다. 실로, 이미륵의 어머니는 그 전에 천금 같은 외동아들을 다시는 못 볼 타국으로 떠나 보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를 크게 신뢰한다. 너는 쉽사리 국경을 넘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유럽에 도착 할 것이다(S. 165f).


이미륵은 강물과 같은 이 어머니의 믿음과 용기에 힘입어 일년에 가까운 기다림의 시간을 견디며 마침내 독일에 도착한다. 그 후 30년의 세월 동안 타국에 묶여 살면서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강가에서 달래곤 했을 것이다. 마치 옛날에 바빌론에 잡혀간 이스라엘 포로들이 강가에 앉아 눈물을 흘리며 향수를 달랬듯이. 나는 개인적으로 시편 중에서도 137편이 가장 아름다운 서정적 비가(悲歌)(Elegie)라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시작한다.


바빌론 강가, 우리는 거기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다. 미루나무에 수금을 걸어 두었더니 우리를 포로로 잡은 이들이 우리에게 시온의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다...

(Luther Bibel)

 

낯선 이방 땅에 도착한 이미륵은 공부로 심신이 피곤할 때면 강가에 나가 강물을 바라며 연평도로, 송림만으로 향수의 돛단배를 흘려 보내곤 했다.


여름 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가는 배를 타고 푸른 하늘 아래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이 섬과 이 만을 바라볼 때면 얼마나 마음 즐거웠던지 (S. 200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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