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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던이> 감상

이 유랑 2005.03.12 05:30 조회 수 : 5440

이미륵의 <무 던 이> 감 상

이미륵 박사 타계 55주년 추모제를 맞이하여

I
겨울이 가고 뮌헨 땅에 다시 3월이 오면 이미륵 박사가 생각난다. 그가 인생 50년을 살면서 절반을 뮌헨에서 보내다가 세상을 떠난 것은 1950년 3월 20일이었다. 올해도 뮌헨 근교의 그래펠핑 언덕에는 그를 기리는 사람들의 발길이 모여들 것이고 조촐하게 추모제가 열릴 것이다. 이미륵이 누구인지, 왜 그가 그래펠핑 묘원에 묻혀있는지를 새삼 이야기할 필요는 없으리라. 독일과 인연이 좀 있는 사람이라면 <압록강은 흐른다>라는 책 이름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 소설 하나가 이미륵의 이름을 대변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미륵이 쓴 작품이 이것 하나밖에 없는 줄 안다. 그러나 한국어로 번역 된 작품만도 여섯 개나 된다. 이중에 하나를 소개하며 올해 타계 55주년을 맞는 이미륵 박사를 추모하고자 펜을 든다. 그 하나란 다름 아닌 <무던이>다. 사후 2년이 지난 1952년 이라는 제목으로 아틀란티스에 발표된 중편 소설 <무던이>는 이미륵의 작품 중에 문학성이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 이길래?

II
황해도 어느 바닷가, 한 조용한 마을에 무던이라는 14살 난 소녀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붉은 가을 석양이 바다 속으로 잠겨들고 어둠이 몰려오는데 무던이는 일 나간 어머니를 기다리며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있다. 오늘 식단은 수수밥에 물고기다. 사람들이 수압댁이라 부르는 어머니가 도착하자 무던이는 저녁밥이 거의 다 되었다고 말한다. 대견한 듯 어머니는 솥뚜껑을 열어보는데, 솥 안에는 물만 끓고 있다. 생선은 비늘도 벗겨지지 않은 채 부뚜막에 놓여 있다. “물만 먹을 거냐”고 웃음 섞인 핀잔을 주며 어머니는 손수 저녁을 짓기 시작한다. 무안한 무던이는 부산하게 어머니를 돕는다. 그러나 부산한 몸짓과는 달리 딸의 마음이 다른 데 가 있음을 수압댁은 눈치 챈다.
“너 오늘 문화댁에 갔었니?”
“응, 그런데...”
“그런데, 뭐?”
“그 아이가 와 있었어.”
“그래서 그렇게 늦었구나. 그 애는 잘 있던?”
“응”
이 말과 함께 무던이의 얼굴은 발갛게 변한다.
소설 첫 부분에 나오는 모녀간의 이 대화에 이미 <무던이>의 주제가 암시되어 있다. 당겨서 말하면 이 소설은 한 시골 소녀의 비극적인 사랑과 삶을 그리고 있다. 진부한 소재라고 말하겠지만 문학에서 사랑과 죽음을 빼면 뭐가 남겠는가? 문제는 그 방식이다.
남편을 여의고 딸 하나를 데리고 사는 수압댁은 농사지을 땅 한 조각 없는 가난한 과부지만 부지런하고 경우 바른 여인이다. 그래서 그런지 읍내에 사는 큰 지주가 소작할 땅을 내주고 집까지 빌려 주어 모녀는 어렵지만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무던이의 비극은 그러나 바로 여기서 싹튼다. 이년 전 남편이 죽은 후 수압댁은 남편의 이름으로 경작하던 땅을 계속 얻어 쓰기 위해 무던이를 데리고 지주를 찾아갔다. 읍내의 부자로 소문이 나 있는 이 지주는 수압댁에게 계속 땅을 빌려 주었을 뿐 아니라 며칠 동안 대궐 같은 집에 머물게 하면서 음식까지 내주었다. 이 부잣집에는 우물이라는 열 살이 채 안된 귀여운 아들이 있었는데 이 아이가 무던이를 무척 좋아하고 따랐다. 조숙한 무던이는 이 아이와 놀면서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만다. 여기서 <무던이>의 비극적 스토리가 전개된다. 이런 나이의 아이들이라면 소꼽장난이나 할 나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옛날에는 달랐던 모양이다. 이미륵 자신이 열두 살 때 여섯 살 연상의 여자와 결혼했고 아이도 여러 명 낳은 사람이다. 그러니까 20세기 초의 한국 농경사회란 그런 식이었다.
부잣집에서 며칠 동안 잘 먹고 친구까지 사귄 무던이는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에게 조용히 묻는다.“이다음에 우물과 결혼하면 안 되느냐”고. 세상 물정 모르는 철없는 딸아이의 물음에 수압댁은 깜짝 놀라 주위를 돌아보지만 속으로 회한의 한숨을 내 쉰다. 한참 자랄 나이에 수수밥 한 번 실컷 먹이지 못해 수척하고 창백한 딸을 바라볼 때마다 얼마나 마음 아팠던가. 무던이가 우물 같은 부자집에 시집 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게다가 우물은 친절하고 예의바른 아이로 수압댁의 마음에도 쏙 들질 않았는가. 그러나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과부의 딸이 그의 배필이 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는 것을 수압댁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앞으로 그런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 나중에 우물의 색시가 될 수 있을지도 몰라.” 이렇게 수압댁은 딸의 입을 막음과 동시에 어린 마음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둘러댔다. 이 날 이후 무던이의 가슴에는 내내 우물이 떠나지 않았다.
한 해가 가고 가을이 되었을 때, 놀랍게도 무던이네 마을에 우물이 나타났다. 마을에는 문화댁이라 불리는 우물의 숙모가 홀로 살고 있었는데 여기에 우물이가 놀러 온 것이다. 무던이는 집안일을 도와주기 위해 그전부터 문화댁을 방문하곤 했다. 여기서 우물을 다시 만난다. 이렇게 우물을 재회하면서 무던이의 마음에는 열병이 재발한다. 이것을 눈치 챈 어머니는 딸에게 쓸데없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고 엄한 경고를 내리는가 하면 며칠 뒤에는 무던이를 데리고 아예 친척 집으로 떠나 버린다. 그렇게 한없는 아쉬움을 안고 떠난 무던이는 이듬해 봄에야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사이 무던이도 현실을 좀 알게 되었는지 더 이상 우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다시 가을이 오고 우물은 또 숙모 집으로 놀러 온다. 여기에 일하러 갔던 무던이는 다시 우물을 만난다. 우연히 우물을 만난 무던이는 뛰는 가슴을 안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준비하지만 정신이 없다. 이것이 <무던이>의 첫 장면에 나오는 모녀간의 대화의배경이다. 무던이는 다시금 어머니로부터 행동거지에 대한 엄한 주의를 받고 조금이라도 우물을 마음에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받는다. 그리하겠다고 대답한 무던이는 그러나 다음 날 저녁에 느닷없이 우물을 데리고 집에 나타나는데 감출 수 없는 흥분에 싸여 있다. 마침 문화댁이 멀리 떨어진 친척집에 가면서 무던이에게 우물을 하루 재워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수압댁도 반갑고 조심스럽게 주인집 아들을 맞는다. 집안을 치우고 아궁이에 불을 많이 때어 초라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방을 최대한 따뜻하게 데운다. 그리고 시집올 때 가지고 온, 몇 번 쓰지도 않은 이불을 꺼낸다. 가장 아랫목에 우물을 누이고 무던이를 그 옆에 눕게 한다. 하루 종일 뛰어 놀아서 그런지 아이들은 금방 잠에 떨어진다. 잠자는 아이들의 얼굴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수압댁의 얼굴에 점차 그늘이 드리워진다. 이렇게 하룻밤을 자고 난 우물은 아침을 먹고 다시 숙모 집으로 돌아간다. 이날 이후 어머니는 무던이에게 문화댁 출입을 금지시키고 아예 우물을 못 만나게 한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풍습도 풍습이지만 미천한 과부의 딸이 부잣집 양반의 아들과 노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보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무던이를 만날 수 없게 된 우물은 얼마 뒤 병이 나 마을을 떠나버린다.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남긴 채. 이날 고기를 사러 가다가 강가에서 이 소식을 들은 무던이는 집으로 돌아와 하루 종일 문설주에 기대어 울기만 한다. 내일이 어머니 생일이라 윗마을에 가 고기를 사 와야 하는데 바구니를 팽개치고 눈물만 흘리고 있다. 이런 딸을 위로하기 위해 수압댁은 장롱에서 새로 만든 치마를 내 놓지만 소용이 없다. 그날 밤 모녀는 한 마디 말없이 잠자리에 든다. 수압댁은 이불 밑에서 무던이의 여린 몸이 소리 없이 떨고 있음을 느낀다. 밤은 깊어 가고 먼데서 들려오는 파도소리는 더욱 고조되어 가는데 어둠 속에서 무던이의 가녀린 손이 어머니를 찾는다.
“어머니”
“왜?”
“화내지 마세요.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고기 사올께요.”
내일이 어머니의 생일이라는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시 몇 년의 세월이 흐르고 무던이는 참하고 부지런한 처녀로 자란다. 마침 윗마을의 부자인 신씨 댁에서 청혼이 들어오고 모두가 기뻐하는 가운데 무던이는 일봉이라는 청년에게 시집을 간다. 무던이가 가마를 타고 집을 떠나던 날, 수압댁은 딸이 이제 굶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이별의 아픔을 달래고, 어머니를 남겨두고 가는 딸은 서러움에 손수건을 적시고 또 적신다.
신씨네로 시집간 무던이는 부족할 것 하나 없는 집에서 시부모님과 남편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렇게 깨가 쏟아지는 신혼을 보내던 어느 날 밤 무던이는 자다가 말고 “우물아” 하고 외치며 일어난다. 잠에서 깬 무던이는 꿈속에서 우물이가 물에 빠져 죽는 것을 보았고 그를 건지러 뛰어들다가 깨었다고 남편에게 말한다.
“그가 그렇게도 좋은가요?”
“예, 그는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꼭 결혼하고 싶었어요.”
자기도 모르게 내 뱉은 이 말이 얼마나 심각한 것이었는지는 며칠 뒤에 드러난다. 즉, 금은보다 무던이가 소중하다고 했던 남편은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절로 들어가 버린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의 가출로 신씨댁은 깊은 수심에 쌓이고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봉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자기가 없으면 아들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시어머니의 말을 듣던 날 밤 무던이는 조그마한 보따리 하나를 싸들고 몰래 집을 나선다. 밖에는 이른 봄의 서늘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무던이는 강둑을 따라 친정어머니가 있는 아랫마을로 하염없이 걸어간다. 마침내 그토록 정다운 어머니가 잠들어 있는 집 앞에 다다다르지만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집 앞 댓돌 위에 주저앉고 만다. 그렇게 오랫동안 앉아 있던 무던이를 다음날 보았다는 사람은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젊은 여인의 시체가 강물에 떠내려가는 것을 보았다는 말이 들려 왔을 뿐이다. 무던이는 그렇게 꿈속에서 본 우물을 따라 영원히 이승을 떠나 가버린 것일까.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 뽕나무 잎은 짙어가고 밭에는 할일도 많건만 이제 바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수압댁의 삶은 낙엽처럼 메말라 갈 뿐이었다. 깊은 밤 피곤한 심신을 누이고 잠자리에 들면 어디선가 여리고 애처로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머니, 화내지 마세요.
내일 아침 일찍 고기를 사 올께요.”

III
이것이 17세의 꽃다운 나이에 물귀신이 되어 버린 무던이의 일생이다. ‘무던하다’는 동사에서 따 만들어 준 이름, 무던이. 한평생 무던하게 살아가라고 이름까지 그렇게 지어주었건만. 슬프고 아름다운 한국적 러브스토리가 아닌가. 이런 서정적 비극성은 <진달래>에서부터 얼마 전 일본 열도를 뒤흔든 <겨울연가>에 이르기 까지 한국인의 감성에 면면히 흐르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무던이>를 이미륵이 정확히 언제 썼는지 아직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또 이 이야기가 어느 정도 실화에 근거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사십 쪽도 안 되는 이 중편 소설에는 속 깊은 강물처럼 조용히 흘러오던 저 조선의 정서가 그대로 담겨있다. 그것이 어떤 현대적 개념으로 설명이 가능한지, 날카로운 분석의 메스를 들이대고 한번 밝혀보고 싶지만 아쉽게도 여기에 그럴 지면이 없다. 대신 스무 살도 안 된 나이에 조국을 떠나 평생 독일 땅에 묶여 살면서 고향의 풍경과 삶을 그림처럼 간직하고 있다가 그것을 아름다운 독일어로 형상화 해 놓은 이미륵 박사에게 고마움을 표할 뿐이다.
그리고 오는 3월 26일엔 다시 그래펠핑 언덕에 올라 한 잔의 술을 건내며 물어보리라. <무던이>가 누구의 이야기냐고.

참고
이미륵: <무던이> 정규화 역 (서울, 범우사) 1974/1989
Mirok Li: Mudhoni, ein koreanisches Bauernmaedche>
Hrg. von Kyu-Hwa-Ch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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