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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삼월이 왔다. 겨우내 쌓였던 눈이 녹아내려 이자 강물은 더욱 푸르고 부드러워진 햇살 아래로 영국 공원의 산책 길이 부산하다. 뮌헨 땅에 삼월이 오면 늘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사람이지만 옛 사람으로 잊어버리기엔 우리의 한 뿌리를 이루고 있는 사람이다. 뮌헨의 한인사(韓人史)를 쓴다고 하면 아니, 독일의 한인사를 쓴다고 해도 필히 첫 장에 등장할 소중한 사람이다.

이미륵. 그가 조국을 떠나 우여곡절 끝에 뮌스터쉬바르짜흐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1920년 어느 봄 날이였다. 그 후 30년을 게르만 땅에 살다가 뮌헨 근교 그래펠핑에서 세상을 하직한 것은 1950년 3월 20일이었다. 가인박명(佳人薄命)이라 했던가. 이른 그의 죽음은 많은 지인들을 안타깝게 했다. 지금, 그로부터 다시 56년의 세월이 흘렀다. 뒤에 태어난 우리도 종국엔 죽음을 향해 흘러가고 있거니와 우리의 의식 속에는 <압록강은 흐른다>와 함께 이미륵이라는 이름 석자가 흐르고 있다.

 하여, 오는 3월 25일(토) 뜻 있는 사람들이 그래펠핑 언덕의 묘소 앞에 모여 조촐하게 추모제를 연다. 30년 세월을 독일 땅에 살면서 마지막으로 건넌 압록강 물결을 한 번도 잊지 못했던 사람, 30년 동안 학문을 통해서나 일상을 통해서나 게르만 땅에 코리아를 품격 높게 알렸던 사람. 뮌헨 땅에 삼월이 오면 그가 생각난다.

 어설프게 손을 댄 문학이지만 명색이 그게 내 전공 타이틀이라,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

(이하 <압록강>으로 표기)에 대한 나름의 독법을 소개하며 그에 대한 추모를 대신할까 한다.




그리고 곧 눈이 내렸다. 어느 날 아침 깨어보니 성벽을 따라 하얀 눈송이가 흘러 내리고 있  었다. 나는 정겨운 순백의 눈을 맞아 행복해졌다. 그것은 고향 마을과 송림만에 그리도 자주  내리던 그 눈이었다. 이날 아침 먼 고향으로부터 처음으로 소식을 받았다.

금년 가을에 어머니가 며칠 앓다가 세상을 하직했다고 큰누나가 편지를 써 보냈다.

Und bald schneite es. Eines Morgens beim Erwachen sah ich die weißen Flocken von    der Festungsmauer herabwehen. Ich war glücklich über das vertraute Wei ß. Das war     derselbe Schnee, der so oft über mein Heimatstädtchen und über die Songnimbucht      heruntergewirbelt war. An diesem Morgen erhielt ich die erste Nachricht aus der fernen    Heimat. Meine älteste Schwester schrieb mir, dass unsere Mutter in diesem Herbst nach wenigen Taged des Leidens von der Welt Abschied genommed hatte.

(Der Yalu fliesst. S.202)


 이미륵의 대표작 <압록강>은 이렇게 끝난다. 뭔가 더 이어져야 될 것 같은 안타까움이 드는 것은 나만의 느낌인가? 그러나 눈과 어머니라는 고감도 한국적 감성어가 별다른 수식어 없이 소설의 매듭을 지어버린다. 이미륵의 정서와 내면 세계에 중요한 화두로 자리잡고 있는 눈과 어머니를 언표(言表)하는 방식이 저리도 초연하다는데 놀랍지 않을 수 없다. 눈이라도 그냥 눈이 아니지 않는가. 천신만고 끝에 도달한 이국에서 맞는 첫 눈이고 고향을 일시에 그림처럼 떠오르게 한 눈이다. 마찬가지로 단순히 어머니의 안부를 접한 것이 아니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어머니의 죽음을 알리는 부고장이다. 그런 충격적인 사건을 삼켜내는 저 방념한(gelassen) 감성이 어디서 나왔을까? 어디서 들끓는 희비의 형용사를 통어할 수 있는 힘이 나왔을까? 이러한 서술 방식은 비단 이 부분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소설 전반에 흐르고 있는 특징이다.

 <압록강>의 전체 내용이 그러하지만 이 부분은 이미륵 자신의 전기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시점은 대략 1920년 늦가을이고 장소는 뮌스터쉬바르짜흐로 추정된다.

서울 경성의전 학생으로 독립 운동에 가담했다가 일본 경찰에 쫓겨 압록강을 건너 천신만고 끝에 독일에 도착한 지 반년 정도 된 때의 일이다. 물론 위의 글은 사건의 실제 시점보다 20년 이상 흐른 뒤에 쓰여진 것이다. 그러니까 저러한 독일어 문장을 쓸 수 있기까지 20년 이상이 걸린 셈이다. 그런데 단순해 보이는 저 문장이 전후 독일 독서계에 가장 아름다운 독일어로 평가받았던 문장이다. 나 같은 사람은 20년이 아니라 200년이 걸려도 그런 소리 들을 독일어를 쓰지 못할 것이다. 부족한 월간지의 지면에도 불구하고 원문을 함께 실은 이유가 여기에 있으니 음미해 보기 바란다.

 잘 아는 사실이지만 <압록강>은 이미륵의 자전소설로 대략 5세 때부터 쉬바르짜흐에 도착해 독일어 공부에 매진하던 21세 때 까지를 아우르고 있다. 어떤 내용인지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을 것이므로 새삼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대신 본 글의 관심은 독일 사람들이 그리도 아름답다고 한 문체의 특성을 어떻게 설명하고 성격지을 것이냐 하는 데 있다. 물론 어떤 문체도 단순히 언어 형식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그 속에는 작가의 사상이나 사유 방식이 어쩔 수 없이 녹아 들어 있다.

 교회 월간지의 글로서는 먹물 냄새가 좀 심하지 않나 생각하지만 이 기회에 뮌헨 한인사의 상류를 이루고 있는 이미륵의 작품을 좀 자세히 들여다보자는 취지이니 양지해주기 바란다.




 이미륵에 관한한 한독 양쪽을 합쳐 놓고 보아도 정규화 박사(지금은 은퇴했지만) 만한 전문가는 없을 것이다. 그가 그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해 놓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이미륵은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다만 아직 본격적인 작품론 같은 것이 나오지 않고 있어 안타까움 없지 않다. 이미륵을 동물학자(Zoolog)가 아닌 작가로 역사에 자리매김 하기 위해서는 그의 작품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가 많이 나와야 할 것이다. 좌우간 정규화 박사는 <압록강>을 해설하면서 이미륵의 문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간단히 언급한 바 있다.

“이미륵의 글은 단순함과 소박성이 특징이고 문체는 설명조도 서술조도 아는 것이 그냥 흥미롭다...”

(Mirok Li - Sein Wesen und Wirken).

이것은 일찍이 이미륵 자신이 언급해 놓은 내용과 거의 같은 맥락이고 실제로 거기에 기대고 있다. 즉, 이미륵은 1944년 피퍼 출판사의 R. 피퍼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의 문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의 소설은 당신도 느꼈겠지만 내가 젊은 날 경험한 것을 소박하게 그린 감성의 그림입니다. 어떤 서술적인 표현이나 설명조의 표현은 피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저분한 분위기를 자아낼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Mirok Li - Sein Wesen und Wirken).


여기서 일단 작가의 입장에서 (intentio auctoris) <압록강>의 문체적 특성과 그 근거를 살펴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지저분한 분위기를 매제한 서정적 미학, 이것이 <압록강> 의 문체적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굳이 독일 문학사의 한 개념을 따와 설명한다고 하면, 나는 “시적(詩的) 사실주의” 에 근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적 사실주의(poetischer Realismus)란 무리하게 단순화시켜 말하면, 말 그대로 사실적인 것을 시적으로 서술하는 방식이다. 문학이라는 게 전반적으로 그런 경향이 있지만 시적 사실주의는 특히 19세기 중엽에 주도적 현상으로 나타난 것으로 Fontane 와 Storm 을 대표적인 작가로 들 수 있다. 시적 사실주의적 작품에는 판타지나 낭만주의적인 가상 세계와는 달리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현실이 나오지만, 변용되고(verklärt) 미화되어 현실의 추함이나 부정적인 모습은 부각되지 않는다. 당연히 사회적 현실보다는 자연이나 인간 내면에 대한 서정적 시각이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특히 자연은 평화와 질서의 공간으로 그렇지 않는 사회역사적인 공간과 대조를 이룬다. 비판적으로 보면 현실 도피적인 분위기가 강하고 허무적인 정조가 베어있다. 대신 여기서 언어적으로 매우 정제되고 서정적인 문제가 발전한다.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있는 슈토름의 유명한 <임멘 호반 Immensee>을 일례로 들 수 있겠다.

 <압록강>으로 돌아오면, 여기에도 이러한 시적 사실주의적 요소가 많이 깔려 있다. 스토리 전체가 이미륵 자신이 실제 겪었던 사건들로 꾸며내거나 덧붙인 내용은 없다. 사건 자체만 보면 매우 힘겹고 고통스러운 내용이 많지만 그것을 읽는 독자는 그런 느낌을 거의 받지 않는다. 위의 예에서도 보듯이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비극이 행복한 첫눈과 오버랩되므로 슬픔의 무게가 중화된다. 이러한 경우가 <압록강>에는 많이 나오지만 우선 “강”과 “물”이 모티브가 된 부분만 살펴보겠다. 어떤 사람은 <압록강은 흐른다>는 제목이 너무 촌스러워 책 읽을 마음이 나지 않았다는 말까지 했지만, 이 제목에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강과 물의 상징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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