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알림마당

방명록

이미륵의 소년소설 연구

최명표 2008.05.05 00:49 조회 수 : 21549

anti_scrape

이미륵의 소년소설 연구
 

최 명 표*

 

 

목 차

 

 

 

Ⅰ. 서론 2. 기억의 공간 심상

Ⅱ. 기억의 서사적 재현 양상 3. 대항 담론으로서의 집합 기억

1. 자서전적 글쓰기로서의 기억Ⅲ. 결론

 

 

 

Ⅰ. 서론

 

근자에 이르러 경제 성장에 힘입어 그동안 외면하거나 소홀히 취급했던 재외 한국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현상이 증가하고 있다. 사회의 전반적인 추세에 따라 재외 한국인들의 문학적 성과에 관한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서 고무적이다. 각종 학회에서는 재외 한국인들의 작품들을 조명한 연구 성과들이 집중적으로 제출되고 있으며, 학술 진흥 단체에서는 소위 ‘이산(diaspora)’과 관련된 연구 주제를 지원하는데 인색하지 않다. 그 결과 일본을 위시하여 중국, 미국, 러시아, 독립국가연합 등의 문학적 성취물에 대한 연구물들이 활발하게 제출되고 있다. 그에 비해 독일의 이미륵이나 프랑스의 서영해 등에 관한 연구물은 상대적으로 영성한 실정이다. 물론 작가의 수효나 작품량의 과소를 수긍할 수 없는 바는 아니나,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작금의 연구 분위기는 재고할 만하다. 재외 한국인 작가들의 문학적 업적을 한국문학의 범주에 수용하고자 한다면, 그들의 거주 지역이나 연구상의 편의를 고려하기보다는 보편적인 척도에 의해 접근되어야 공정성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륵(1899-1950)의 본명은 의경이며, 미륵은 아명이다. 그는 경성의전에 재학 중 발발한 3․1독립만세운동에 가담했다가, 일제의 감시망을 피해 1920년 중국으로 탈출하였다. 중국에서 9개월간 체류하는 동안에 그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의 청년단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안중근 의사의 친척 안봉근과 함께 망국민의 신분으로 중국 여권을 소지하고 독일로 망명하였다. 그는 독일에 도착한 뒤에도 조국의 독립운동에 열성적이었는데, 1927년 벨기에에서 개최된 ‘세계약소민족해방운동’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여 독립을 호소하며 전단을 배포하기도 했다. 이러한 전기적 사실은 그가 1928년 뮌헨대학교에서 동물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에 (초당(The Grass Roof))(1931)의 작가 강용흘과의 만남을 계기로 글쓰기에 진력하게 된 사정을 시사한다. 조국과 멀리 떨어진 유럽에 홀로 남은 그는 독립을 앞당길 수 있는 방안의 하나로 소설 창작을 결심한 것이다. 또한 자연과학을 전공하여 세속적으로 안락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가치를 우선시한 그의 신념도 소설가로 입신하게 된 배후 요인이었다. 독일에 거주하는 동안에 그는 장편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를 비롯하여 여러 편의 소설과 에세이를 발표하였는데, 그의 문학작품들은 독일의 교과서에 수록될 정도로 독일인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이처럼 그의 공적은 “독문 작품들을 통해서 한국(동양) 사상 및 문화를 서구에 전도한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미륵의 소설들은 “한 소년의 성장 과정을 통하여 휴머니티의 이상을 추구하고 인격의 완성을 주제화”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어서 소년소설의 범주에서 접근해도 무방하다. 이에 본고에서는 이미륵의 소설세계를 ‘기억’의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그의 문학 작품들은 대부분의 이민 1세대 작가들에게서 검출되는 문화적 충격과 정체성의 혼란보다는, 일관되게 고향에 대한 향수를 형상화하고 있다. 곧, 독일에 거주하는 동안에 겪었을 법한 이질적 문화 체험이나 정신적 방황 등은 찾아볼 수 없다. 또한 그의 작품에 삼투된 향수도 장기간의 외국 생활에서 야기된 것이라기보다는, 철저하게 어린 시절의 고향에 대한 ‘기억’을 회상하는데 필요한 매개항으로 기능한다. 이런 점에서 그의 소설작품에 구조화된 ‘기억’의 의미를 탐색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Ⅱ. 기억의 서사적 재현 양상

  1. 자서전적 글쓰기로서의 기억

 

소설은 경험의 서술이고,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문자적으로 기억하는 부류이다. 기억은 1인칭 서술이다. 1인칭은 ‘나’의 경험을 서술하는 구조적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 불가피하게 ‘나’의 주체 분리 과정을 겪는다. 그것은 곧 ‘나’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과정이다. 경험 자아(서술되는 ‘나’)와 서술 자아(서술하는 ‘나’)의 간극은 작가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공간이다. 이런 면을 주목하면, 재외 한국인들의 문학작품들에서 두루 발견되는 자서전적 요소를 간과할 수 없다. 그들에게 조국은 기억의 공간이며, 유년 시절의 추억을 상기시켜주는 매개항이다. 그들은 고국을 회상하는 과정을 통해 민족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하고, 자신의 문학 행위를 합리화한다. 소설적 구성 장치로서 회상 형식은 이야기를 질서화하고, 작가로 하여금 정체성을 형성하도록 도와주는 구실을 수행하는 것이다. 정체성은 연속성 위에서만 확보될 수 있으므로, 그들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질의로 실존적 의미를 재생산한다. 그들의 문학작품들이 자서전적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자서전은 “한 실제 인물이 자기 자신의 존재를 소재로 하여 개인적 삶, 특히 자신의 인성의 역사를 중점적으로 이야기한, 산문으로 쓰인 과거 회상형의 이야기”이다. 따라서 자서전에는 작가의 경험이 회상의 형식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와 유사한 자서전적 소설은 자서전의 진실성을 담보하면서 작가의 허구를 가미한 것이다. 이 양식의 장점은 소설의 리얼리티를 우선적으로 확보하면서, 작가의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이미륵의 소설들도 예외없이 자서전적 양상을 보인다. 그의 (압록강은 흐른다)(1946)는 ‘수암’으로부터 ‘목적지로’까지, 한 소년의 성장 과정을 촘촘하게 그린 작품이다. 1930년대 중반부터 10여년간에 걸쳐서 집필된 이 장편소설에서 그는 시종일관 차분한 어조로 식민 조국의 추억과 실상, 조국의 탈출 전후를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작품의 집필과 출판 연도 사이에는 제2차세계대전이 자리하고 있는 바, 이 점은 그의 소설을 읽는 도중에 시대적 맥락을 끊임없이 의식하도록 작동한다. 이미륵의 신분이 독일과 추축국이었던 일제에 의해 점령된 식민지인이라는 사실이야말로, 그의 소설이 전쟁의 영향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주요 요인이다. 전쟁은 그의 소설에서 직접적으로 문제시되지는 않았으나, 작품의 생산과 유통 과정에 보이지 않게 관여하고 있다. 이 점은 그의 소설들이 철저하게 비독일적이고 전혀 한국적인, 무현재적이고 전적으로 과거적인 내용으로 일관하게 된 외적 요인이다. 이러한 작법은 이미륵이 ‘생략의 글쓰기(elliptic writing)’를 통해 말할 수 없는 사정에 대해 침묵으로 말하는 태도를 증거하는 동시에 ‘대위법적 독해’를 요구한다. 이것은 그의 소설세계로 진입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그 배경적 요인으로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불분명한 그의 신분으로, 그는 망국민인 동시에 중국이라는 외국의 여권을 소지한 이중적 외국인이었다. 당시 독일의 입장에서는 중국이나 멸망한 대한제국이나 동일하게 강대국의 점령 대상에 불과했다. 그는 독일 국민들에게 동정의 대상이었을 뿐, 정당하게 교류할만한 상대가 못 되었던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가 독일과 군사적으로 동맹국이었던 일제에 대항하여 정치적으로 망명한 독립운동가라는 사실이다. 그가 왕성하게 작품을 집필하던 당시에 독일을 통치하던 히틀러는 ‘위대한 게르만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군비를 확장하고, 국민들의 사상 통제를 실시하고 있었다. 히틀러는 “거지와 부랑인들의 보호수용이라든지, 반사회적 분자들을 집단적으로 수용해서 관리하는 ‘예방적’ 보호 감독 등, ‘내부의 적들’에 대한 조치로 대중적 지지”를 얻고 있었다. 그런 전시 상황에서 외국인 신분의 그로서는 재독 생활의 이모저모를 자유롭게 소재화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이러한 신분상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이 작품의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며 부기한 아래의 서신에서 그의 신중하면서도 단호한 태도를 추측할 수 있다.

  Ph. Lejeune, 윤진 역, (자서전의 규약), 문학과지성사, 1998, 17쪽.
 ‘대위법적 독해(contrapuntal reading)’는 사이드(E. W. Said)가 명저 (오리엔탈리즘)에서 제국주의 담론을 비판적으로 읽기 위한 전략 으로 제안한 것으로, 악보를 읽을 때와 같이 텍스트의 표면(말하는 것)과 이면(감추어진 것, 암시된 것, 억압된 것)을 동시에 읽는 방법이다.

나의 소설을 당신도 읽으면 알게 되겠지만, 나의 소년 시절에 체험한 일들을 소박하게 그려내 보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는 이러한 체험담을 서술하는데 장애가 되는 모든 설명과 묘사는 피했습니다. 동시에 동양인의 내면세계에 적합하지 아니한 세계적인 사건들은 비교적 조심성있게 다루었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순수하게 그려냄으로써 한 동양인의 정신세계를 제시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이것은 나에게 아주 친근한 것으로, 바로 나 자신의 것입니다.(1944년 3월 26일)

 

이와 같이 이미륵은 동양인의 한계를 명료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오리엔탈리즘에 입각한 독일인들의 시선을 인지하고, 그것을 교정하기 위한 전단계로 ‘동양인의 내면세계에 적합하지 아니한 세계적인 사건들은 비교적 조심성있게 다루’었다. 그는 이러한 서술 태도가 자신에게 친근한 것이라고 변명하면서도, 그것이 ‘나 자신’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낯선 이국의 독자들에게 첫 선을 보이는 작품집과 ‘나’를 동렬에 위치시킨 그의 발언은 독일의 우방이었던 일제의 침략 논리를 비판할 목적으로 의도된 것이다. 그는 소설에서 일제의 침탈이 자행되기 이전의 한국 문화가 지닌 우월성을 ‘나 자신’의 자존심과 동일시하여 진실성을 담보하고 일제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동시에, 독일인들에게는 식민지로 폄하된 한국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요구한 것이다. 그는 ‘체험담을 서술하는데 장애가 되는 모든 설명과 묘사는 피’해가는 방법으로 주관성을 지양할 수 있었고, 독자들에게 한국적 상황의 정확한 실체를 제시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이 작품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쓰지 않은 부분을 찾아서 재구성하는 등, 독자의 주체적이고 세심한 독법을 요구한다.

 

이 날 아침에 나는 저 먼 고향에서 온 첫 소식을 받았다. 큰누님이 쓴 편지였다. 지난 가을에 어머님이 며칠 앓으시다가 세상을 떠나셨다는 사연이었다.((압록강은 흐른다), (압록강은 흐른다 (외)), 176쪽)

 

작품의 끝 문장이다. 이미륵은 고도로 압축된 문장을 선호하여 상황의 서술에 필수적인 일체의 설명조차 삭제한다. 앞의 예문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이역만리의 고향에 있는 누나로부터 첫 편지를 받게 된 설레는 감정이나, 어머니의 임종으로 인한 상심은 전혀 노출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개인적 감정을 절제하는데 익숙한 그의 성격 탓이기도 하겠지만, 그것보다는 정치적 동기를 지적하는 편이 타당하다. 그는 정치적 탄압을 피해 외국으로 망명한 처지였기에, 자신의 신분을 전면에 노출하기 어려웠다. 또한 문학적 견지에서 보더라도, 정치적 신념을 표출하게 되면 소설적 성과가 반감되면서 인륜을 훼손시킨 일제의 야만성이 후순위로 밀려날 염려가 있었다. 이에 그는 정치적 조건들을 사상하고, 철저하게 인간적 가치를 지향하는 소설적 복선을 장치함으로써, 소기의 성과를 거양하면서 전쟁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는 효과를 획득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륵이 정치적 주장을 철회한 것은 아니었다. 아래의 인용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그는 고도의 서술 전략을 발휘하여 일제의 만행을 지속적으로 폭로하고 있다.

 

“그렇게 역사 깊은 문화국을 식민지화하다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테라우치는 물론 이러한 의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말을 여러 차례 들었다. 동경에는 사실상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은 예술과 종교의 숭고한 발상지로, 이러한 문화가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것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이상주의자들이 한국의 현실정을 목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국민의 대부분이 불결하고 가난하게 살고 있으며, 왕가라는 것은 사욕을 채우고 치부만을 생각하는 배반자, 매수자, 환관, 궁녀, 무당들이 모여드는 수용소가 돼버리지 않았는가! 이렇게 몰락해가는 나라에 대해서 사람들이 도대체 존경심을 가질 수 있을까? 일본이 유럽의 문명을 도입, 현대식으로 무장된 나라로서 강화되어 한국을 지배했다는 사실이 한국을 위해서는 차라리 좋은 일이 아닐까?((실종자」, (압록강은 흐른다 (외)), 231쪽)

 

이미륵의 문체는 이처럼 교묘하다. 소설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차용하여 자신의 전언을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한편, 그로 인한 면책 사유를 소설의 허구적 성격에 귀속시켜버리는 그의 기교는 차라리 노회하다. 그는 전기로서의 자서전과 문학적 허구물로서의 소설이 지닌 특성을 아우를 수 있는 자서전적 소설 양식을 통해 자신의 성장기와 학창 시절을 손상시킨 일제의 침략상을 고발하고 있다. 그는 외형상 일제가 주장하는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을 수긍하는 척하지만, 실은 한국이야말로 ‘역사 깊은 문화국’이자 ‘예술과 종교의 숭고한 발상지’라는 역사적 사실을 내세워서 일제의 외교적 수사를 반박하고 있다. 그는 멸망한 조국에 대한 감정을 전혀 내색하지 않으면서도, 일제의 침략 논리에 은폐된 추악한 이면을 폭로하는 효과를 거둔 것이다. 아울러 그는 ‘일본이 유럽의 문명을 도입, 현대식으로 무장된 나라로서 강화되어 한국을 지배했다는 사실’을 표나게 언급함으로써, 일제의 한국 침탈을 묵인한 유럽 열강의 책임을 은근하게 부연하고 있다. 그것은 무조건적으로 유럽을 동경했던 자신의 성향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고, 독일에 거주하는 동안에 유럽 담론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게 된 결과이기도 하다. 그는 이후로 독일의 지식인들과 히틀러를 비판하면서 보편적 가치를 지닌 교양있는 세계인으로 살아갈 것을 결심하게 된다.

인간의 경험은 언어를 통해 서술된다. 따라서 “언어와 기억은 개인적 회상의 차원에서나 집합적 경험의 제도화의 차원에서나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반복적으로 확인되어야 한다. 언어는 한 인간의 시간과 공간을 증언하며, 자서전적 요소를 중시하는 작가는 언어의 이러한 특성에 주목하여 경험을 형상화하게 된다. 이미륵은 자신을 이야기하는 과정을 통해서 식민지 이전의 경험들을 회상한다. 그의 기억은 주로 유년기의 고향에 국한되어 있는데, 유년 시절이야말로 자신과 이웃들의 경험을 공유하기에 적합한 시간이었다. 아울러 소설 속의 시간이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작가가 그곳에서의 경험들이 언어로 기억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가치란 주체의 의지에 의해 선택되고 폐기된다. 그가 선별한 경험에 가치를 부여하여 언어로 진술한 것이 자서전적 소설이다. 따라서 그가 유년기 체험을 각별하게 반복적으로 서술하는 것은, 그의 기억이 그 시절의 공간과 결부되어 튼튼하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2. 기억의 공간 심상

 

인간은 ‘여행하는 동물(Homo Viator)’이다. 한 인간의 성장 과정에서 공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막대하다. 그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공간 속에서 이동하고 정착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그의 생은 절대적으로 공간적 배경하에 형성되며, 그 점에서 공간은 역동적 표지이다. 공간에 비해, 장소는 정지된 표지이다. 장소의 속성은 “인간의 모든 의식과 경험으로 구성된 의도적 구조에 통합된다”는 점에서, 인간의 의식현상을 검출하기에 제격이다. 장소는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작가에게 어린 시절의 체험을 회상시켜주는 가치지향적 공간이다. 그는 이 장소에서 ‘나’의 모습을 반추하면서, 시제상의 도움을 빌어 과거의 모습을 회상할 수 있다. 회상이야말로 주체의 공간 기억을 재생하는 서술 형식인 셈이다. 그런 까닭에 그가 장소에 집착할수록 장소감은 강화되고, 장소의 기억 가능성이 배가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스신화에서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Mnemosyne)는 뮤즈의 어머니이다. 두 여신의 혈연관계로 미루건대, 그리스인들은 기억을 소리와 관련지어 파악한 듯하다. 그것은 시인이라는 어휘가 자갈 위를 흘러가는 물소리를 나타내는 아람어로부터 유래했다는 어원적 사실과 함께, 파동이 기억의 보존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모름지기 시인이 되기 위해서는 주위의 소리를 세심하게 경청하고, 주변의 사태들을 기억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작가가 세계의 소리에 관심을 표명하는 그 순간, 기억은 “경험 자체를 담아두는 것이라기보다 그에 대한 기록”이 된다. 기억은 소리를 통해 기록되어 이질적 공간에 위치한 청자들을 동질적인 표상으로 인도한다. 소리를 매개로 구성원들은 상호간의 친밀성을 인식하게 되고, 집단적 정서의 보존을 위해 감각적 경험을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이때 공간은 기억의 배경으로 작용하여 기억을 저장하는 장소가 된다.

 

눈이 깊이 쌓이면 쌓일수록, 밤이 조용해지면 조용할수록 낭독은 더욱더 감동적으로 고조되어 갔다. 따라서 사람들은 멀리에서도 이야기의 주인공이 얼마나 어려운 처지에 빠져들고 있는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종종 이런 집 앞에 서서 귀를 기울였다. 그것은 소설의 줄거리가 어떻게 전개되는가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에 평화가 깃들여 있던 때의 걱정없는 내 어린 시절을 회상시키는 그 목소리를 들어보기 위해서였다.((압록강은 흐른다), (압록강은 흐른다 (외)), 106쪽)

 

소설 작품에서 기억은 공간과 결부되어 재현된다. 이미륵은 유년 시절의 ‘평화’를 되살리기 위해 이국의 한 가정에서 들려오는 동화 읽는 소리를 경청한다. 그의 청문은 한국과 독일의 이질적 공간을 동질화하고, 현재와 과거를 시제상으로 일치시킨다. 그렇지만 그의 노력은 고향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이 초래한 일시적인 동일시 감정일 뿐, 현재 겪고 있는 향수병을 대체하지 못한다. 도리어 그가 낭독음을 듣기 위해 남의 집에 근접할수록 향수의 심도는 깊어지고, 시간은 유년기를 향해 거슬러간다. 그에게 유년기는 원시적 질서가 온전히 보존되어 있는 태고의 시간이다. 그곳은 원체험으로 기억되는 공간으로서, 그의 현재적 시간 개념을 무화시킨다. 그의 시간이 그곳으로 향하는 것은 근원으로 회귀하고 싶은 내밀한 욕망의 움직임을 따른 것이다. 그가 유년기의 추억이 존치된 “그곳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것은 시간을 재생시키는 것이고, 다시 시간이 전개되므로 인해서 접촉을 갖게 되는 것은 오히려 ‘원초적 시간’, ‘최초로 일어난’ 사건의 시간”으로 귀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소설쓰기는 ‘걱정없는 내 어린 시절을 회상시키는 그 목소리를 들어보기 위’한 주체적 욕망의 발현이고, 기억의 문자적 재현에 다름아니다.

이미륵의 실제 공간은 ‘고향-경성-고향-중국-독일’ 순으로 변모하는 양상을 보인다. 그의 공간은 현실적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이동하였다. 당시의 시대 상황에 따라 비교적 단순하게 지속되는 그의 공간 이동은 고향으로 회귀하지 못한 생의 비극성을 증표한다. 무릇 한 인간의 생애는 ‘고향-출향-고향’의 순환적 구조를 이루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는 망명자로서 환국하지 않은 채 생을 마감하였다. 그가 무슨 이유로 귀국하지 않았는지 밝혀진 바 없으나, 설령 귀국한다고 해도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북녘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그에게 귀국은 서둘러 결행할 수 없는 과제였는지 모른다. 그는 해방 후에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지속적으로 표현하면서 고국의 전통문화를 독일에 소개하는 작업에 몰두하였다. 일제에 의해 고향을 떠났던 그에게 남북 분단은 귀향을 방해하는 장애물이었으므로, 고향으로의 복귀를 실현되지 못한 그의 작품에서 공간의식이 특정 장소에 정지해 있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이런 점으로 미루건대, 이미륵의 공간의식은 독일에 체류하는 기간에 전혀 변하지 않았다.

한 인간의 공간의식이 불변한 사실은 그곳의 공간적 중요성과 함께 현재적 공간에 대한 욕구 불만을 반영한다. 이미륵의 독일 생활은 친구와 동료들의 도움으로 물질적 어려움은 없었다. 그렇지만 그들의 후박한 우정이 그의 뇌리에 각인된 고향의 원형을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의 회향 의지는 여전했으나, 외군의 주둔으로 원래의 상태를 잃어버린 고향은 더 이상 의미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의 소설 속에서 고향의 모습이 유년기의 체험 공간으로 되풀이 제시되는 현상이야말로, 고향에 대한 그의 기대 욕구를 반영하고 있다. 그의 소설적 공간은 고향에 고정되어 특정한 장소로 전환한다. 타국에서 생활방식이 전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았던 그에게 고향은 우주적 평화의 공간일 터이다. 그곳은 훼손되기 이전의 주자학적 질서가 지배하는 공간으로, 타국에서의 신산스러운 삶을 위무하는 심리적 요소이다. 그에게 “장소의 이미지는 안정과 영속의 이미지”로 작용하여 현실에서 직면하는 여러 가지 문제사태를 이완시키는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그가 작품 속의 특정 공간을 통해 심리적 갈등을 완화한다는 점에서, 장소는 정서적 완충지대이기도 하다. 이것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그의 제약된 환경을 노출하면서, 실현되지 못하는 정치적 소망을 문화적 생산으로 보전하고 있음을 증좌한다.

 

이곳이 율곡(栗谷, 밤골)이다. 이곳을 통하여 구소(九沼)라는 아름다운 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 강은 수많은 굽이굽이에서 계곡을 벗어나 아홉 개의 깊고 푸른 늪(沼)을 이루고는 급작스런 흐름으로 커다란 바위덩어리를 쳐부수고 소용돌이치며 천천히 옆으로 퍼져 흘러갔다. 바로 여기가 양잠업으로 부유하게 살아가는 웃마을과 가난한 농어민의 초가집으로 꽉 찬 아랫마을과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었다.((무던이」, (압록강은 흐른다 (외)), 178쪽)

 

이미륵의 장기가 드러난 대목이다. 그는 감정을 절제하고, 객관적 태도로 풍경을 묘사한다. 그렇다고 소설적 장치들을 예사롭게 대하지 않는다. 문면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아름다운 강이 급류로 변하는 광경을 통해 웃마을과 아랫마을 간의 갈등을 암시한다. 그는 압축적 서술로 공간을 묘사하면서도, 서사의 진행 방향을 제시하는 노력도 소홀히 취급하지 않는다. 그는 문체상으로 간결한 단문을 선호하거니와, 그것은 유교적 절제를 체현하는 그의 생활 태도에서 절로 우러나온 것이다. 이 작품은 그의 소설 (실종자」(1984)의 전편으로, 공간을 떠나지 못하는 여인의 전통적 삶을 다룬 것이다. 공간이 여인의 삶을 규정하고, 여인이 공간에 복종하는 소설적 상황을 통해서 작가는 인간과 공간의 상호관계를 천착한다. 이미륵에게 공간은 한국의 전형적인 여인이 감당하는 비극적 일생을 구체화하는데 유효하다. 이처럼 그의 공간 개념은 거주자의 일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생의 조건을 규정한다. 그의 소설에서 여성인물들이 담당하고 있는 역할은 공간의식을 연속적으로 환기시켜주는 것이다. 그녀들은 어머니의 대리인물로서, 고향의 여성성과 함께 조국의 물질적 토대를 형성한다.

인간은 유의미한 기억을 장기간에 걸쳐 파지하기 위해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 중 하나가 분명하고 이해하기 쉬운 구조를 가진 가상의 장소로 바꾸어 기억하고 싶은 심상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미국에 정착한 영국인들이 고향의 지형과 유사한 곳에 향리의 지명을 부여한 사례가 이에 속한다. 이런 방법은 새로운 공간에 대한 낯선 감정을 조속히 평정하여 당해 공간에 애착을 갖는데 유용하다. 기억이 오래 보존되기 위해서는 심상과 결부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기억이 장기간 보존된다고 해서 당자에게 유익한 것만은 아니다. 이미륵처럼 정치적 망명자의 신세라면, 기억은 선택적으로 배열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의 망명은 현체제로부터의 자발적 탈출인 까닭에, 기억은 망명 사태를 야기하기 이전의 시간 속에서만 의미를 띤다. 그에게 고향이 무이한 심상으로 기억되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심상은 작가에게 고향에 대한 기억을 구체화해주면서, 그것의 유효기간을 증대시키는데 기여한다. 이처럼 기억은 “한편으로 순수지각의 이미지(표상)들을 하나의 실로 이어주는 역할을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적 지각 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표상을 구체화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기억이 지각된 표상의 형성에 개입한다는 것은 조직화되는 것이고, 그것은 주체의 기억 작용에 의해 부분 기억으로 결합되는 상태를 가리킨다.

 

언젠가 나는 우체국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만 알지 못하는 집 앞에서 멈춰서고 말았다. 그 집 정원에는 한 무더기의 꽈리가 자라고 있었는데, 그 빨간 열매가 햇빛에 빛나고 있었다. 우리 집 뒷마당에서 그렇게도 많이 보았고, 또 어렸을 때 즐겨 갖고 놀았던 이 식물을 나는 얼마나 좋아했던가! 마치 고향의 한 토막이 이곳 내 앞에 실제로 와있기나 한 것 같았다. 내가 오랫동안 생각에 몰두해 있을 때, 어떤 부인이 집에서 나와 왜 그렇게 서 있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가능한 한 자세히 나의 어린 시절을 그 여자에게 이야기했다. 그 여자는 그 가지를 하나 꺾어서 나에게 주었다. 나는 그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압록강은 흐른다), (압록강은 흐른다 (외)), 176쪽)

 

이미륵은 이역에서 ‘한 무더기의 꽈리’를 보고, 마치 ‘고향의 한 토막이 이곳 내 앞에 실제로 와있기나 한 것인 양 일순간에 매혹되어버린다. 기억은 “때때로 나에게는 통제 불가능한 것으로, 나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나의 신체에 습격해 오는 것”이어서, 그는 이국의 꽈리에 발길을 멈추고 소싯적의 기억을 회상하기에 이른다. 꽈리는 그에게 고향의 생가를 재생시켜주는 촉매인 셈이다. 인간이 유년기의 장소에 애착을 갖는 까닭은 그곳이 생후 최초로 체험한 어머니라는 장소가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장소는 어머니와 동일시되어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그를 매혹하고, 그의 시선은 중성화되어 현존하는 시간이나 공간과 무관한 지점에 정지된 채 존재의 고독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므로 “매혹은 고독의 시선”이다. 이미륵의 소설적 시간들이 유년기에 고정되어 있는 이유인즉, 그의 장소감이 고향의 어머니에 매혹되어 고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독일에서 생활하는 기간에 그가 경험한 고독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징표이다. 곧, 그가 유년기의 고향에 대한 공간적 서술을 되풀이할수록, 상대적으로 고독한 그의 처지가 전경화되는 것이다.

 

3. 대항 담론으로서의 집합 기억

 

자서전은 다수를 향한 일인의 담론이다. 개인은 지배적 권력을 전유하고 있는 다수에게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보장받기 위한 수단으로 자서전을 선택한다. 자서전은 개인의 변론권을 보호해주는 바람막이인 셈이다. 그는 지배 담론으로부터 소외된 자신의 환경에 대한 반동으로 자기중심적 담론을 생산하여 지배 서사와 갈등관계를 형성한다. 그 과정에서 개인은 자신의 존재를 주장할 수 있고, 담론이 생산되기까지 연루된 환경적 요인을 점검하며 재인식할 수 있다. 아울러 개인은 자서전을 집필하는 동안에 자신의 생애와 경험을 반성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그는 사실적 요소를 지닌 자서전을 통해 자신의 주장에 진실성을 부여하고, 사실의 개연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 이 점이야말로 자서전이 개인에 의해 빈번히 착수되는 주요 동인이다. 개인은 자서전을 통해서 집단의 정체성을 경험하게 되고, 새로 이적한 집단으로의 편입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이다.

재외 한국인들의 소설작품에서 검출되는 자서전적 요소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들은 새로 이주한 국가의 외래인이라는 자의식을 탑재한 자서전적 작품을 통해 미래적 전망을 탐색한다. 그가 문제시하는 사건은 과거시제에 머물지만, 그가 확보하기를 희망하는 시제는 미래이다. 현재적 삶의 조건으로 매개된 시간상의 연계는 그로 하여금 물질적 토대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도록 추동한다. 그는 현재의 상태에서 확실한 과거와 불확실한 미래를 동시에 조감하는 것이다. 그의 전망이 공간을 통해서 집요하게 시간의 연속성을 탐구하는 동안에 자기정체성은 집단적 범주로 편입된다. 그가 제출하는 문학적 성과들이 대항적 성격을 함의하게 되는 순간이다. 그에 의해 호출된 과거적 기억은 반드시 타인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이다. 이런 측면에서 기억은 사적 차원에서 행해지는 내면의 독백이 아니라, 억압된 사회 구조 속에서 발화되기를 욕망하는 집단적 경험의 단층이다.

이미륵은 일제의 지배를 피해 독일로 전치된 지식인이다. 일제의 침략이 없었다면 그의 망명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터이므로, 그의 기억은 개인사적 수준을 초월하여 집단적 기억으로 전이된다. 식민 상태로 전락한 조국을 떠나 이역에 거주하는 그의 발언은 더 이상 사적 담화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그가 일제에 강점된 조국의 문화적 전통성을 거론하거나, 이민족에게 침략당하기 이전의 평화한 질서를 소재화하는 것은 식민 당국에 대한 대항 담론을 생산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그것은 심정적으로 과거에 대한 기억을 통해 현재의 점령 상태가 무력화되기를 희망하는 문자적 행위이며, 현재적 상태의 무질서와 이전의 질서를 대비시켜 질서의 훼손 상태를 보고하기 위한 증빙자료이다. 이 점에서 이미륵의 소설이 기억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기억은 과거적 경험을 현재적 시점에 되살리는 것이므로, 불가피하게 ‘지금-여기’라는 맥락을 필요로 한다. 그의 기억이 회상되는 시점과 공간의 의미가 예사롭지 않은 근거이다.

그가 작품 활동을 하던 당시에 독일과 일본은 군사적 제휴관계에 있었다. 1930년대의 독일은 1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인한 경제적 보상과 1929년 미국에서 발생한 경제대공황의 여파로 국민들의 생활상은 처참한 지경이었다. 바이마르공화국은 높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마르크화 가치의 절하 등, 당면 과제의 해결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으나 실패하였고, 1933년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당이 출현하는 물질적 기반을 제공하였다. 히틀러는 전체주의를 표방하며 독일의 경제를 중흥시키는데 성공하여 국민들의 환호를 받았다. 그는 1936년 11월 일본과 상호방공협정을 체결하였고, 이듬해 11월 이탈리아가 가입하여 3국은 반소비에트 구호를 명분으로 파시즘화를 추진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은 이미륵의 집필 과정에 깊이 개입하여 작품의 문체와 주제, 배경 등에서 극도의 긴장감을 의식하도록 압력하였다. 그의 소설에서 독일 생활에 대한 언급이 전무하고, 작품상의 시공간이 한국에서의 유년시절에 한정되는 것도 결국 그를 둘러싼 열악한 환경이 강요한 결과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기억은 공간적 외연을 확대할 수 없었다.

 

어렸을 때에 이런 일이 있은 지 어느덧 30년 이상이나 흘러갔고, 그때 읽은 이야기의 대부분은 내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각별히 내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들만이 기억에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그 이야기들을 독일말로 옮겨 보려고 시도하였다.

내가 이 이야기들을 번역해 놓고 읽어 보니 우리 누나가 얘기해 주던 호랑이 이야기며, 서당에 같이 다니던 친구들의 조그마한 방이며, 부모님께서 내게 얘기해 주시던 근심 없던 시간이 기억에서 되살아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머리말」, (이야기), 18쪽. 밑줄: 인용자)

 

인용문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는 기억으로 글을 쓰고, 기억하기 위하여 글을 쓴다. 그가 유년 시절의 경험을 회상하며 글쓰기를 결행하는 동안, 그는 독일의 이미륵이 아니라 식민지 원주민 소년으로 돌아간다. 말하자면, 그는 서사행위를 통해서만 ‘나’의 정체성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기억은 한 인간의 정체성을 생성하고 확보하여 유지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는 민족의 구성원으로서 정서적 자질을 공유하기 위해서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는 것이다. 그가 독일에서 생활하는 동안 내내 기억에 토대한 글쓰기를 견지한 이유는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으려는 실존적 몸부림이었다. 아무리 사소한 개인적인 기억일지라도 “공간적인 틀을 매개로 서사되는 기억은 집단의 정체성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집합기억”에 속한다. 그가 기억한 이야기들이 ‘지금-여기’에서 문제시되는 이유인즉, 외국의 강점에 의해 ‘30년 이상’된 기억을 소지하게 된 사정 때문이다. 그는 한 세대 이상에 걸쳐서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지 못한 채 과거의 기억에 유폐되어 있었다. 그것은 장기간의 공백 사태를 초래한 일제의 침략 행위가 비난받아야 할 이유이며, 동시에 기억의 공간을 확장시키지 못하도록 압박한 독일의 정치 상황을 반증한다.

이미륵의 소설 (탈출기」(1984)는 1926년 5월 26일 독일에 도착하기까지 겪었던 다양한 경험들이 파노라마처럼 묘사된 작품이다. 소년 시절에 그는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며 유교적 사유방식을 학습하였다. 이후에 그는 부모의 도움으로 의학 공부를 하다가 독립만세 대열에 참가한 후에 낙향하였다. 일경의 요시찰 인물 목록에 등재된 이미륵으로서는 식민지에서 신속히 탈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일경을 피해 평소에 가고 싶었던 독일로 가기를 재촉하는 어머니를 두고 망명길에 올랐다. 하지만 노모를 두고 이국으로 떠나는 길은 재회를 기약할 수 없기에 막막하다. 그의 탈출은 단순히 한 모자의 이별이 아니다. 그것은 일제의 강점이라는 외부적 요인의 개입으로 강제된 것이므로 사회적 사건이다. 또한 전통사회의 규범상으로 자식이 부모 공양의 책임을 방기하고 노모를 떠나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었고, 효제(孝悌)를 최우선의 실천 덕목으로 삼는 유교적 도덕률을 어렸을 적부터 체득한 그의 윤리관은 극심한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그의 가출이 자식의 불효이자 집단의 비극적 기억으로 기록되어야 할 이유이고, 그의 출향이 대항 담론으로서의 집합기억적 요건을 취득하는 찰나이다.

 

나는 내 모든 것을 다 잊고 다 버릴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었다. 즉 나의 책들, 내 방, 집, 고향, 친지, 벗 그리고 친척들을 용감하게 저버릴 수가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부담스러웠고, 나를 억누르고 굴복시키는 무거운 짐 같이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나는 떠나버렸고, 또한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버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단 하나 내가 버릴 수 없었던 것은 동양인에게 그 무엇보다도 중대한 책임인 ‘자식의 의무’였다.((탈출기」, (압록강은 흐른다 (외)), 312-313쪽)

 

기억은 의식의 지속 상태를 가리킨다. 지속되지 않은 기억은 무의미하다. 무의식은 회상되지 않는 기억이다. 그러므로 순수의식으로 회상할 수 없는 기억은 선택의 기회를 봉쇄당한다. 이미륵은 ‘자식의 의무’를 끊임없이 상기하며 동양의 절대적 가치관인 효도를 거론한다. 그것은 자식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불효자의 탄식이면서, 동시에 인륜을 거역하도록 가격한 일제의 폭력적 행위를 고발하는 수사적 책략이다. 이미륵은 자신의 글쓰기가 단순한 소설적 차원을 넘어서 동시대의 역사적 기록 행위라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한 작가였다. 그가 유난스럽게 동양적 덕목과 한국적 문화의 모습들을 소설화한 것도,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상기하기 위한 서술적 전략이었다. 그것은 외세에 의해 강제된 원주민들의 정치적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식민 상태가 종결되어야 한다는 전언의 언표행위였다. 따라서 그의 소설을 읽는 도중에는 행간에 생략된 발화를 찾아내는 일이 중요하다. 그는 외적으로 자식의 편재적인 후회의 변을 모사한 듯하지만, 내적으로는 지배자의 담론이 기획한 음모의 정체를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미륵의 글쓰기는 중의적이다. 그는 전세계가 전운에 휩싸여 있던 시기에 식민지 종주국보다 우위를 점한 식민지의 문화적 전통을 거론함으로써, 일제의 왜곡된 논리를 각개격파하기 위한 소설적 실천을 시도했다. 그는 (한국어 문법」(1927)에서 한글의 우수성을 설파하였고, (한국과 한국인」(1934)에서는 한국의 문화적 배경과 동북아시아의 정세 등을 언급하며 일제의 조속한 퇴각과 조국의 독립을 역설하였다. 그는 독일에서 교류하던 친구들과 반나치 회합에 참석하였고, 스스로 세계인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격문을 쓰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국의 조상 숭배」(1934) 등에서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고, 뮌헨대학교에서 한국문학을 강의하며 서도에 매진하는 등, 한국적 삶을 실천하기에 궁행하였다. 특히 해방 후에 그는 신기에 가까운 기억술을 발휘하여 작품집 (이야기)(1974)에 한국적 정서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수 편의 전래동화를 번역하여 수록하였다. 이런 점을 부연해보면, 그의 기억들은 외국에서 소수자로 생존할 수 있도록 지탱해준 버팀목이었고, 다수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담론적 토대가 되었다.

 

 

Ⅲ. 결론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미륵의 소설은 한 소년의 성장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의 작품들은 동양적 사유 방식을 고수했던 가치관과 함께, 생활 터전이었던 독일의 교양소설에서 말미암은 문학적 성과로 보인다. 그가 작품집을 발행했을 당시에, 독일은 일본과 함께 패전국이었다. 전후의 독일 사회가 비관적 분위기에 휩싸여 있을 때, 단정한 문체, 평이한 문장, 이국적 풍경 묘사 등으로 휴머니즘을 지향한 그의 소설은 독일 전역에서 큰 호응을 얻게 되었다. 아울러 그의 소설들이 여느 재외 한국인 작가들과 달리, 이질적 문화 충격이나 정체성의 혼란을 보여주지 않고 유년기의 편재적인 ‘기억’을 취급한 점이 성공을 기약한 배경이었다.

이미륵의 소설은 자서전적 요소가 강하다. 그는 유년기의 ‘기억’을 바탕으로 서사적 상황을 구성하였고, 서사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였다. 그의 소설에 구조화된 기억들은 식민지 원주민 소년의 성장 단계에 대응한다는 점에서 지배 서사에 대항하는 집합기억이었다. 이 점에서 이미륵의 소설적 성취들은 오늘의 시점에서도 여전히 문제적이다. 그는 1990년 12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을 만큼 독립운동에 가담했던 행동파 지식인이었지만, 조국의 식민 상태를 염원하는 일체의 서술을 배제하면서도 주제상의 효과를 거둔 문장가였다. 그러므로 그의 소설작품들에 수용된 고향의 경험들이 ‘기억’의 관점에서 재인식될 때, 지금까지 정당하게 등재되지 못한 이미륵의 소설사적 위상은 정상적으로 자리매김될 것이다.

 

 

■주제어: 자서전적 글쓰기, 기억, 장소, 대항 담론, 집합 기억

참고문헌

 

<기본 자료>

이미륵, 정규화 역, (압록강은 흐른다 (외)), 범우사, 2006.

이미륵, 정규화 역, (이야기), 범우사, 2000.

http://www.mirokli.com

 

<단행본 및 논문>

변화영, (기억의 서사교육적 함의―유미리의 (8월의 저편)을 중심으로」, (한일민족문제연구) 제11호, 한일민족문제학회, 2006. 12, 3-37쪽.

최윤영, (한국문화를 쓴다―강용흘의 (초당)과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 비교 연구), 서울대출판부, 2006.

황수영, (물질과 기억, 시간의 지층을 탐험하는 이미지와 기억의 미학), 그린비, 2007.

岡眞理, 김병구 역, (기억․서사), 소명출판, 2004.

Blanchot, M., 박혜영 역, (문학과 공간), 책세상, 1990.

Drraisma, D., 정준형 역, (기억의 메타포), 에코리브로, 2006.

Fontana, J., 김원중 역, (거울에 비친 유럽), 새물결, 2005.

Giddens, A., 권기돈 역, (현대성과 자아정체성), 새물결, 2001.

Lejeune, Ph., 윤진 역, (자서전의 규약), 문학과지성사, 1998.

Picard, M., 조종권 역, (문학 속의 시간), 부산대출판부, 1998.

Relph, E., 김덕현 외 역, (장소와 장소 상실), 논형, 2005.

Yi-Fu-Tuan, 구동회․심승희 역, (공간과 장소), 대윤, 1999.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