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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제60주기 추모제 소식

강욱재 2010.04.12 11:26 조회 수 : 14147

이미륵 박사 60주기 추모식 성대하게 치러져


 이미륵 박사 60주기 추모식 성대하게 치러져
“뮌헨 근교 그레펠핑 묘지에서 영구 보존 묘족증 헌정, 시민회관에서 한국문화행사 개최”

 

뮌헨) 1950년 3월 20일은 'Der Yalu fliesst(압록강은 흐른다)'를 발표해 당시 전후 시대 정신적으로 피폐해 있던 도이치인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전해준 한국인 작가 이미륵(Dr. Mirok Li) 박사 (본명 이의경 1899-1950, 동물학전공)가 타계한 날이다.
  그리고 2010년 3월 20일 토요일은 그가 외로이 세상을 떠난 지 정확히 60년이 되는 날이다.
  뮌헨 이미륵 박사 기념사업회(회장 송준근)는 이날 오후 3시 그레펠핑 시립묘지에서 원근 각지에서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미륵 박사 서거 60주년 추모제를 거행하고 오후에는 시민회관에서 한국 문화행사를 개최했다.
그레펠핑 묘지에서 추모제
  만물이 소생하는 3월, 절기는 봄이라지만 매년 추모식 때면 궂은 날씨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이번 추모식은 하늘도 축복하는 양 화사한 날씨를 선사해 방문하는 추모객들의 발길을 가볍게 했다.
  이번 60주년 추모식은 송 회장의 주관아래 뮌헨에 공식 법인체가 설립되면서 임원들이 정성껏 준비한 묘지 추모제외에도 그레펠핑 시민관에서 한국을 소개하는 다양한 문화 행사가 거행되었다.
  그레펠핑 시장과의 협의로 이미륵 박사의 묘지가 영구보존되는 계약이 지난해 12월에 성립되면서 그레펠핑 공동체에서 한국을 보는 시각도 많이 달라졌다.
  도이칠란트와는 차별되는 한국인의 특별한 조상 숭배 정신을 통해 그레펠핑 시장(Christoph Goebel)의 한국인을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며 그가 행사를 준비하는데 보여준 관심과 협조 또한 대단했다. 
  아울러 이번 추모식에는 한국에서 유족대표 이영래 회장뿐만 아니라 이 박사의 평전을 집필한 박 균, 노환웅 교수, 이 박사의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 를 공동 제작해 영화로 만들어 성공한 SBS 이종한 감독과 바이에른 방송국 BR의 헥크너 박사(Dr.Heckner), 주연배우인 에바역의 우테 캄포스퀴(Ute Kamposkwy) 씨도 베를린에서 방문했다.
  또한 강병구 주독한국문화원장, 주프랑크프루트 총영사관 김성춘 부총영사, 그레펠핑 부시장 Hr. Koestler, 신순희 뮌헨한인회장 등 많은 뮌헨 교민뿐 아니라 비스바덴, 아욱스부르크 등 다른 도시에서도 추모객들이 방문했다.
  마침 지난 3월 16일 23시 25분에 BR에서 방영된 'Der Yalu fliesst'를 통해 도이치인들의 한국에 대한, 이 박사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일깨운 것도 이번 추모식에 유난히 많은 도이치인들이 방문하는데 한 몫을 차지했다
  묘지에서의 추모식은 전통적인 제례의식에 따라 초헌은 유족대표 이영래 회장이 드리고 강운식씨가 축문 낭독, 주 프랑크푸루트 김성춘 부총영사가 축사를 전했다.
  중헌은 이종한 감독과 배우 Kampos-
kwy가 공동으로 잔을 받아 올렸고 바이에른 방송국의  Heckner 박사도 평생에 처음 드리는 서투른 절을 올렸다.
  이어 이 박사의 기념비를 집안 정원에 세워 놓을 만큼 이 박사에게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메르큐어 신문사 대표 이펜 박사(Dr. Ippen)도 두 손으로 잔을 드리고 절을 올렸다.
  이종한 감독은 이 박사의 묘지 영구보존 계약시 그레펠핑 시장에게서 받은 묘족증을 헌정하며 절을 올렸고, 박균 교수도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평전을 헌정했다. 한국의 신차식 교수는 추모식 기념우표를 보내왔다.
  한국의 전통 제례의식을 보면서 도이치인들의 눈은 호기심으로 커져만 갔으며 동포언론뿐만 아니라 여러 도이칠란트 언론매체에서도 앞다퉈 취재에 열을 올렸다.
  다 함께 묵념과 애국가를 부르는 것으로 묘지에서의 추모제를 마친 참석자들은 한국 문화 행사 가 개최될 그레펠핑 시민회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면 지하에서나마 이 박사님이 얼마나 흡족해 하실 지를 생각하니 뿌듯하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찡하다"며 "살아생전에도 그 콧대 높던 도이칠란트 지식인들의 관심과 총애를 받던 그가 타계한지 6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를 잊지 못하는 많은 도이치인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으니 그는 정녕 위대한 선조임에 틀림없다"고 한 참석자가 나즈막히 속삭였다.

 

시민회관에서 문화행사
  묘지에서의 추모제에 이어 뮌헨 시민회관에서 저녁 5시부터 한국 문화 행사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시민회관 1층 2층이 모두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 준비위원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사회자 박미경씨가 환영인사와 함께 간략하게 이미륵 박사에 대해 설명을 해 참석자들의 이해를 도왔고 이 박사 기념사업회 송준근 회장은 인사말에서 그동안 법인체가 설립되기까지의 과정과 묘지 영구 보존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이미륵 박사는 경성의학전문학교 3학년 재학 중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중국을 거쳐 1920년 도이칠란트에 망명했던 독립운동가이자 도이치 문학 작가로 1930년대 중반부터 10여 년 간 심혈을 기울여 'Der Yalu fliesst'를 집필했다.
  송준근 회장은 이 박사가 도이칠란트에 남기고 간 업적을 기리고 그의 한국 선비정신을 본받자며 송 회장의 마지막 소원은 뮌헨에 이미륵 박사 기념관을 건립하는 것이라며 교민들과 도이치인들의 적극적인 후원과 협조를 당부했다.
  이어 그레펠핑 부시장 Hr. Koestler 씨도 사업회가 설립되기까지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았던 송 회장의 노력과 집념에 감동 받았다며 이미륵 박사가 만들어 놓은 한국과 도이칠란트의 문화 교류의 다리가 앞으로도 더욱 단단해 지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강병구 문화원장의 인사말과 유족대표 이영래 회장의 모든 분들께 건강과 가정의 평화를 기원한다는 인사말로 모든 관계자들의 인사가 끝났다.
  "압록강은 흐른다"를 공동 제작 영화화해서 이 박사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 낸 이종한 감독과 BR의 Dr. Heckner에게 감사의 꽃다발이 전해지고 전혜현 양의 쇼팽 피아노 연주곡이 시작되었다. 솔로 최정곤씨는 "Ich liebe dich(당신을 사랑해요)" 를 선사했고 누리 무용단의 강현숙, 진승희씨가 삼고무를 추어 한국 문화 행사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예쁜 절 솜씨로 관중들에게 많은 박수를 받은 한글학교 학생들과 김창훈 군의 도서낭독도 행사의 품위를 더했고, 무형문화재 "승무" 를 바치기 위해 일부러 한국에서 어려운 발걸음을 했다는 박 균씨의 혼신의 힘을 다한 춤사위가 너울너울 이 박사의 영혼을 위로하며 승무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온갖 춤사위가 집대성된 한국 춤의 백미를 선사했다.
  여성합창단(김화란 지휘, 홍성은 반주)의 민요합창은 화려한 한복과 잘 조화를 이루었고, 강욱재씨가 제작한 "이미륵 박사의 삶의 모습" 을 한눈으로 볼 수 있는 동영상은 감동스런 한편의 영화와도 같았다.
  지휘자 김화란씨의 "봄이 오면" 독창을 끝으로 문화 행사는 막을 내렸고, 주최측에서는 호텔 아리랑에서 준비한 한식으로 손님들을 접대했다.
  송 회장은 이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으나 임원들이 한마음으로 잘 협조해 주고 이렇게 많은 분들을 모시고 성공적으로 행사를 치르게 되어 마음이 흡족하다며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송 회장의 마지막 소원, 그는 뮌헨에 기념관을 세워 이 박사의 정신과 업적을 기릴 뿐 아니라 이민 역사 40년이 지나도 갈 곳 없는 나그네의 모습인 뮌헨 교민들을 위해 만남의 장소를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도이칠란트 전역에 이 박사를 소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는 송 회장은 오는 4월 이러한 문제로 또 한국을 방문 할 예정이라고 한다.그가 꿈꾸고 있는 일들이 정녕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의 얼굴은 오늘도 피곤하지만 불가능이란 없다는 굳은 의지와 집념을 보여준다.
                 【박미경 기자】
(우리신문 제286호 2010년3월27일자 9면 기사)


고 이미륵 박사 묘역영구보존 계약


이제는 편안하게 영면하소서 故 이미륵 박사님"
한국 부산상호저축은행 김 양 대표, 그레펠핑 시장과 묘소영구보존 합의서명

 

뮌헨】이제 고 이미륵 박사의 영혼이 도이칠란트 땅에서 편히 영면할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 그레펠핑시 묘지임대규정에 따라 7년, 10년, 25년 단위로 기한을 연장해 오던 고 이미륵 박사 묘역 계약이 영구보존으로 변경된 것이다.
   지난 해 12월 17일 뮌헨 근교 그레펠링 시청에서는 그레펠핑시 (시장 Christoph Goebel)와 이미륵 박사 기념사업회(회장 송준근), 그리고 후원업체인 부산상호저축은행(대표 김 양)의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미륵 박사 묘역영구보존 계약서에 서명했다.
  뮌헨 이미륵 박사기념사업회는 그레펠핑시와의 오랜 논의 끝에 25.000유로를 이미륵 박사 묘지영구보존대금으로 사전 합의했다. 이와 관련 이미륵 박사기념사업회는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영화 <압록강은 흐른다> 상영관에서 <이미륵 박사묘지 영구보존기금 모금운동>을 벌려 약 9000유로를 모금하고, 나머지 부족액 16.600 유로는 부산 상호저축은행 김 양 대표가 선뜻 지원해 이날 영구보존계약을 한 것이다.
  이날 송준근 이미륵 박사 기념사업회장과 김 양 대표 일행, 뮌헨한인회원들(회장 신순희), 뮌헨한글학교 학생 등 20여명이 함께 영하 15도의 추운 날씨에도 이미륵 박사 묘소 참배를 마친 뒤, 그레펠핑시 케스틀러(Hr. Peter Koestler)부시장과 담당자 브라흐너 (Fr.   Brachner)씨의 안내로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장식된 시청 중앙 홀로 안내되었다.
  케스틀러 부시장은 "외국인으로 그레펠핑에 이미륵 박사님이 많은 업적을 남기셨다." 며 "이미륵 박사님 묘소에 머리 숙이기 위해 방문하는 한국인들의 관심과 정성에 대단한 감동을 받았다."며 일행을 환영했다. 또한 그는 "오늘이 있기까지 이미륵 박사님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확고한 신념으로 수고해 온 송준근 뮌헨 이미륵 박사 기념사업회장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범적인 인물이다"고 극찬했다. 아울러 "영구계약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재정적인 지원을 해 준 한국의 크고 작은 손길들과 상당 금액 후원으로 직접 방문한 김 양 대표께도 진심 어린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고 말했다.
  김 양 대표는 "이미륵 박사님의 묘지가 영구 보존될 수 있도록 그동안 온갖 봉사와 수고를 하신 송준근 회장님과 뮌헨 교민들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또한 시청관계자들에게도 감사 드린다."며 "앞으로도 계속 이미륵 박사님을 더욱 알리기 위해 함께 힘을 모으자."고 강조했다. 
이날 영구보존계약 서명식을 우리신문사 외에도 도이칠란트 유명 일간지 쥬트 도이취 차이퉁(S ddeutsche Zeitung), 뮌헨의 메르쿠어(M nchener Merkur)지 등 언론사들이 취재경쟁을 벌렸다.
 
송준근 회장은 "이렇게 기쁘고 행복한 날은 없었다." "이역만리에서 그리던 고향을 못 보고 생을 마감해야 했던 이미륵 박사님의 영혼이 편안히 영면할 수 있을 것" 이라며 감격해 했고 오늘을 기념으로 "우리 한국인들이, 특히 도이칠란트에서 자라고 있는 우리 후손들이 이 박사의 맑고 바른 인간애와 선비와 같은 곧은 정신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한 그는 "뮌헨에 작게라도 이미륵 박사 기념관이 세워져 그의 흉상과 작품, 기록물들을 보관, 전시하면서 한국인들이 언제든지 방문할 수 있는 만남의 장소, 뮌헨의 교민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사랑과 화합의 장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영구보존계약대금을 후원한 부산 상호 저축은행의 김 양 대표는 협찬금 3억원을 지원해 지난 여름 한국의 SBS 방송사와 바이에른 방송국(BR)이 공동합작으로 그레펠핑에서 작고한 최초의 재독 한인작가 이미륵 박사의 생애와 자서전<압록강은 흐른다> 을 영화화하게 한 장본인이다. 이 영화는 이미 한국에서 두 차례 상영되었다.    일제의 감시에 쫓겨 도이칠란트까지 물 흐르듯이 흘러온 한 외로운 한국인의 삶을 그린 영화가 요즘처럼 감각적인 유흥을 추구하는 시대에 당연 대박감은 아니지만 이 박사의 도이칠란트 생활을 통해 한국인의 정서와 모습을 잘 그려낸 SBS 이종한 감독의 다큐영화이다.
  히틀러 정권과 세계2차 대전의 피폐로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닌 세상 도이칠란트에서 이미륵 박사는 한국 선비의 정신으로 마음이 메말랐던 사람들에게 따뜻한 인간애를 심어 주었고 그의 솔직하고 진솔한 모습을 아직도 생존해 있는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다.
                 【박 미 경 기자】
(우리신문 제278호 2010년1월30일자 10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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