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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할아버지와 나의 외할머니

장은숙 2004.10.18 20:28 조회 수 : 5258

황해도 해주가 고향이신 나의 외할머니는 해주에서는 꽤 많은 땅을 소유하신 양반가의
큰 딸로 태어나셨다. 실은 외할머니는 다섯 번째 태어난 자식이셨는데 옛날에는 어린 신생아의
사망률이 높았듯이 할머니 위로 4분이 신생아적에 모두 사망하셨다는 것이다.

다섯 번째로 태어나셨으나 집안의 장녀 이셨고, 이후로 두 분의 여동생이 태어나 외할머니의
아버지께서는 세 번째 따님은 태어난 지 백일도 안된(어렴풋한 기억이지만 생후 5~6일정도)
어린 딸을 멀리 사는 소작농의 유모 집에 보내셨단다.

“아버지께서는 한시라도 빨리 아들을 얻으시려는 생각에 단호하게
보내야 한다고 하셨고 어머니께서는 어린자식을 떼어 놓으려니
무척 힘들어 하셨다“고 외할머니는 기억하고 계셨었다.

그리고는 외할머니의 어머니께서는 절에 다니시면서 미륵보살님께 아들을 점지 해 달라고
기도를 하셨다고 한다. 그리하여 아드님을 얻게 되셨고 미륵할아버지 아명이 미륵이 되신
근거이기도 하다.

그 후 6 여년이 흐른 뒤에 유모 집에 보내졌던 따님(미륵할아버지의 막내누님)이 해주 집으로
돌아오셨는데 그녀는 시집갈 때까지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를 않았다는 것이다.
갓 낳아서 남의 손에 키워졌기 때문에 처음 보는 어머니가 서먹서먹해서 어머니를 보면
큰언니인 나의 외할머니 뒤로 숨고 시집갈 때까지 큰언니를 어머니같이 따랐다고 하셨다.

대갓집 외아들이 거의 그렇듯 미륵 할아버지도 무척 몸이 약하셨고 아주 똑똑하고 영리한
동생이었다고 말씀해 주셨다.
미륵 할아버지가 서당에 다시시던 시절, 동네에 처음 신식 학교가 생겼는데, 그곳에 다니고
싶어 애를 써도 조선 말기 보수적이던 아버지께서 허락을 하지 않으시자, 몰래 학교에 찾아가
창 넘어 도둑 공부를 하셨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알고 아버지께서 허락을 하셔서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었으나, 몸이 약해 학교엔
오래 다닐 수 가 없었고, 집에서 쉬었으며, 쉬는 틈틈이 강의록으로 독학을 하여 지금의
서울의대 전신인 경성의학대학에 입학 하셨단다.

해주에서 경성(서울)을 다니려면 차편이 용이하지 않아 배를 타고 인천으로 와서 인천에서
서울로 기차를 타고 다니셨다고 한다.

그때 그들 남매는 모두 혼인을 하여 나의 외할머니(이 의선)께서는 인천에서 사셨고, 바로 밑
동생(이 의정)은 서울에 살고 계셨고, 셋째 되시는 분( 이의순)은 원산으로 시집을 가셨고,
미륵(이 의경)할아버지도 이미 결혼한 상태이셨다고 한다.

3.1운동 당시에는 운동에 가담하여 일경에 쫓기게 되자 걱정하시는 어머니를 대신하여
외할머니께서 인천에서 서울까지 걸어가셔서 찾아다니시기도 하셨단다.

삼일 운동이후 미륵 할아버지는 일경에 쫒기는 신세가 되셨고, 그리하여 망명을 결심하시고
중국으로 가시게 되는데... 최종 목적지는 처음부터 독일이셨던 듯싶다.
일제 시대 사셨을 그 당시 일본과 독일의 관계가 돈독 했던 듯싶고 독일이 선진국이라는
생각을 하고 계셨고 선진국의 문물을 접해 보고자 독일을 택하셨으리라.

그리고 처음 독일에 도착하셨을 때는 그렇게 그곳에서 남은 평생을 다 보내실 생각은
아니셨을 텐데..

난 어려서 외할머니와 외숙모 그리고 외사촌 남매와 한집에서 10 여년을 같이 살았다.
6. 25때 외할머니의 아드님이신 외가 아버지가 행방불명되셨고 집도 잃어버리시는
바람에 우리 집으로 오셔서 한집에서 같이 살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외할머니께 미륵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그때는 어딘지 알 수는 없었지만
먼 나라에 계시는 할아버지께 편지가 왔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듯 했고 미륵할아버지는
그의 큰 누님이신 나의 외할머니께 한복 한 벌을 만들어 보내 주실 것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내셨으며, 여자의 한복감 한감도 보내달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독일의 미륵 할아버지께 한복 한 벌과 두루마기를 만들어 보내 드렸다는 외할머니의 말씀을
들었었다. 우리가 지금 볼 수 있는 미륵 할아버지의 한복차림의 사진에서 난 외할머니의
손길을 느낀다..
그리고 고향을 애타게 그리워 하셨을 미륵할아버지께서 그 한복을 받으시고 얼마나 기쁘셨을까?
그 느낌이 내게 전해져 오는듯 하다.

어린 우리는 곧잘 할머니께 옛날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졸랐고 외할머니께서는 우리에게 아주
많은 옛날이야기 들을 들려 주셨는데 그 이야기들은 아마도 외할머니의 어린시절 외할머니의
남매들께 어머니나 할머니께서 들려 주셨던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왜냐하면 미륵할아버지가 쓰신 이야기라는 단편집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읽어보면 모두 어릴 적
할머니께 들은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지금 미루어 생각해 보면 미륵 할아버지는 독일에서 고향을 무척 그리워 하셨으며 고향에
관한 모든 것들 그리고 어릴 때 자라면서 겪은 일과 들은 이야기들이 미륵할아버지 창작의
소재가 되었던 것이다.

미륵 할아버지는 한복을 무척 아끼면서 입으셨고 고향집의 모형을 만들어서 서재에 놓고
매일 보면서 그리워 하셨다는 이야기를 읽은 일이 있다.

병세가 악화되어 고향에 돌아올 수 없었을 때 임종시에 애국가을 부르며
돌아가셨다는데 얼마나 고향을 그리워 하셨으면 그리 하셨을까?
가슴이 찡 해온다.

미륵 할아버지의 작품들이 우리나라의 국문학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실 날을 기대하며
언젠가는 독일 그래펠핑의 할아버지 산소에 참배하러 갈 날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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