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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인에서 이미륵

2005.06.07 23:03 조회 수 : 5062



이미륵 선생의 대표적인 작품은 <압록강은 흐른다>입니다.
다음은 이선희님이 쓰신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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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암- 그것은 나와 함께 자라난 내 종형의 이름이다’로 시작되는 이 책은 이미륵이라는 한 망명자가 독일어로 쓴 자전적인 소설이다.

조선이 스러지고 일제의 침략과 함께 신·구문화의 교체가 있었던 시대. 그러나 이 책은 차분하게 어린 시절의 놀이친구들, 살구가 맛있던 고향 마을의 아름다움, 3·1 만세운동에 참가했다가 일제를 피해 압록강을 건너고 중국과 베트남을 거쳐 독일에 도착하게 된 그가 두 번 다시 가지 못했던 고향에 대해 담담하게 회상하는 내용을 풀어놓고 있다. 그가 그리워했던 나라는 이후 반으로 갈라지고, 전쟁의 참혹함에 휘말리게 되지만….

김산의 <아리랑>이나 항일운동사를 다룬 책들처럼 묵직하지는 않지만, 그 시절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꼈을 소소한 일상, 슬픔과 인간다움, 새로운 결심들이 은은하게 배어나온다. 깊게 고요히 흐르는 압록강처럼 사람들은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아갈 것이다. 단아한 문체와 간결함, 고향을 떠나온 망명객이 느끼는 슬픔과 향수로 인해 오래 여운이 남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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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이미륵 선생이 어머니를 만나 끌어 안고 있는 상상도이고요.
이미륵 선생의 단편 '어머니'(계수나무 刊, 독일에서 독일어로 쓴 소설을 번역한 것임)의 삽화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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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미륵 선생은 어떤 분인가?
다음은 정규화 성신여대 교수가 <이미륵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서 쓴 글입니다.

이미륵은 1899년 3월에 태어나 1950년 3월에 세상을 떠났다.

1910년 11세 때 6세 연상인 최문호와 결혼, 1남 1녀를 두었으나 아들은 6.25 때 사망하고 딸은 생사가 불명하다. 경성의학 전문학교 학생시절에 일제의 탄압과 우리 민족의 좌절감을 목격하면서 망명길에 올라서 독일 뷔르츠부르크 및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수학하고 1928년 뮌헨대학에서 동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20년부터 1950년까지 30년 동안 독일에서 살다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미륵의 대표적 자전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는 2차대전 직후 독일어로 씌어진 가장 빼어난 문장이란 평가를 들으며 중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하였다. 그의 휴머니스트적 면모가 유감없이 드러난 작품이었다. 소박하고 간결한 표현법과 친근감 가는 작가의 유년시절 묘사는 문화의 차이를 뛰어넘어 독일인들에게 인간 본성에 대한 원초적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장롱 위의 꿀을 훔쳐먹다 들켜 혼난 일화며 손톱에 봉숭아 꽃물 들이던 기억, 쑥 뜸의 공포, 잠자리채 이야기 등은 아주 토속적인 한국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누구나 갖고 있을 유년에의 동경이었다.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에 따르면 그가 3.1운동 후 압록강을 건너 망명길에 오를 때 어머니가 한 말은 이랬다.

“그래, 용기를 내거라. 비록 우리가 다시 만나지 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너무 서러워 말아라. 너는 내 생에 있어 너무 많은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얘야 이젠 너 혼자서 네 길을 가거라.” 이후 그는 고국 땅을 다시는 밟지 못했다. 그는 독일에서의 30년을 그리움 향수 추억 우수 등으로 점철된 삶을 살면서 문학 활동을 통해 한국적인 인간미를 통해 독일의 지식인들과 독자를 경탄 시켰다.

그는 언제나 전통이나 인간을 부정하거나 절망적인 태도로 관망하지 않았다. 이미륵의 생애에 충격을 준 것은 첫째 일본의 침략과 망명이었으며 둘째 그가 독일서 겪은 제 2차 세계대전과 나치의 출현이었고, 셋째 말년에 그를 덮친 병마였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 속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갈등이나 대립을 적절히 처리하고 해결하면서 주위에 있는 독일 친구들을 감동시켰다. 그는 독일인들에게 한국의 얼과 문화를 어떤 외교관보다 더 마음 속 깊이 넣어준 사람이다. 한 사람의 예술이 한나라를 해외에 소개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위대한 한국의 혼을 가진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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