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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미륵박사 추도식

김명희 2003.07.08 11:06 조회 수 : 7590

故 이미륵박사 추도식

지난 3월 22일 뮌헨 외곽에 자리잡고 있는 Grafelfing묘소에서 故 이미륵박사 53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대표작 ‘압록강은 흐른다’로도 잘 알려진 이미륵박사는 3.1운동 가담 후 일본 경찰의 탄압을 피해 1920년 독일땅에 도착하였다. 각고의 노력 끝에 1928년 뮌헨 대학교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박사는 한국을 주제로 한 많은 글들을 독일사회에 소개하면서 유럽 문단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번 故 이미륵박사 추도식은 뮌헨대에서 독문학 박사과정을 마친 정규화(이미륵박사 기념 사업회 회장, 현 성신여대 독문과 명예 교수)교수와 송준근(뮌헨 한인 식품점 사장)씨에 의해 기획되어 12년간 한 해도 빠짐없이 열리고 있다. 故 이미륵박사 기념 사업회에는 이미륵박사 개인과 그의 업적에 관련된 70여명의 회원이 활동중이고, 이미륵박사의 유작품 원고 보관과 수집을 주요 사업으로 삼고 있다.

이미륵박사의 유작품은 현재 국립 중앙 도서관 고전 문학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90년대 중반부터 학회, 사진 전시회, 그리고 전국 강연회를 통해 이미륵박사를 널리 알리는데 쓰여지고 있다.

이날 추도식에는 이미륵박사의 손자 (이 영래) 를 비롯 이미륵박사와 친분이 있었던 독일계 인사들 그리고 한인교포 30여명이 모여 오후 3시부터 한 시간에 걸쳐 전통적으로 이루어 졌다. 뮌헨 유학생이라고 밝힌 한 청년은 “평소 이미륵박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다가 우연히 이 추도식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 참 뜻깊은
자리인 것 같아 내년에도 참석할 계획이다“ 라고 말했다.

이미륵박사 기념 사업회에 관한 더욱 자세한 사항은 아래 주소로 문의하면 된다.
송준근 : 089) 531906, 0178877 8056
홈페이지 : www.mirokli.com, ++82)32) 815-1950

뮌헨 송준근사장으로부터 듣는
- 뮌헨의 "우리 유적지" -

뮌헨 괴테플라츠, 모짜르트거리에 있는 아시아 식품점을 방문할 때마다 반갑게 맞아 주는 분이 있다. 1992년부터 지금까지 이미륵박사 기념사업회를 줄곧 맡아 수고하고 있는 송준근 사장님이다. 그는 십여년이 넘게 이미륵박사의 묘소 및 추모 행사를 돌보고 있다. 문학을 하거나 친인척 관계에 있지도 않으면서 이박사에 대해 그렇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 한국인으로서 고마운 일이다.
뮌헨의 유지 송 사장님으로부터 그가 간직해 온 이미륵박사에 대한 이야기와 이박사가 독일 국민에게 주었던 영향, 또 한국인으로서 그의 역사적 의의를 들어본다.

11월 1일은 ‘Allerheiligen'(가톨릭의 묘소참배의날)이라는 독일의 국경일이다. 80년대말 이날 송사장은 두 자녀를 데리고 산책 삼아, 한국의 문화를 가르칠 겸 그래펠핑(Graefelfing)에 있는 이미륵 박사의 묘소를 찾게 되었다. 이 날 이후 송사장은 매년 아이들과 함께 묘소를 방문했다. 1992년부터 송 사장을 중심으로 7-8명의 다른 분들도 함께 참여하게 됐고, 그때부터 정식으로 우리나라 전통의식에 따른 유교식 제사를 치르게 됐다. 이 연례행사가 점점 규모가 커져감에 따라 담장 밑 음지에 비좁게 안치되어 있던 이 박사의 묘소를 그래펠핑 내의 좀 더 넓은 장소로 이장해야 된다는 여론이 생겼다.

이박사 기념사업회를 주도해 오던 정규화 교수(성신여대 독문과 명예교수)는 교민들의 의견서와 경제지원을 위한 청원서를 청와대에 보내어 정부로부터 이 박사의 비석을 기증받게 됐다. 1997년, 묘비를 이장된(1995) 묘소 앞에 세우며 제막식을 가졌다. 정교수는 뮌헨 유학 당시 이박사의 유적과 그의 업적을 발굴해 이 박사의 역사적 가치를 세상에 알리는데 결정적 공헌을 한 분이다. 정 교수는 이박사의 저서‘압록강은 흐른다’ 등 다수의 저서를 한국어로 번역, 출판해 보급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현재 이미륵박사 기념사업회 회장이기도 하다.

이미륵박사는 1899년 황해도 해주에서 감찰사 아버지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경성의학전문학교 3학년 (1917~1919) 당시 3.1운동에 가담하다, 일본 경찰의 탄압을 피해 상해로 망명을 갔다. 그곳에서 망명객을 보조하며 어려서부터 꿈꾸던 유럽행을 준비해 독일유학을 떠나게 된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이 뮌스터슈바르차하 분도회 수도원이었다(1920). 그 이듬해 뷔르츠부르크 대학교 의학부에 입학해 독일유학의 첫 발을 내딛게 됐으나 아쉽게도 건강이 악화되어 휴학을 해야만 했다. 완쾌 후 다시 하이델베르크 대학을 거쳐(1923) 1925년에 뮌헨대학교 생물학부 동물학과로 전학 3년 뒤에 뮌헨대학교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박사는 뮌헨에 살면서 서예지도(1928~1930), 뮌헨대학교의 동양학부 강사(한학
및 한국학 분야, 1948-1950)로 강의를 맡기도 했다.

이미륵 박사는 1931년 문예지 Dame 에 ‘하늘의 천사 (Nachts in einerkoreanischen Gasse)'를 독일어로 발표하면서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그래펠핑에 문인단체 ‘Montags-Kolloquium을 설립한 이박사는 1946년에는 독문소설 ‘압록강은 흐른다 Der Yalu fliesst'를 발표해 독일사회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이 무렵 그의 글에 대한 평가가 Suddeutschezeitung 에 자주 실렸다. 저서 ‘압록강은 흐른다‘ 의 일부분은 독일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졌다. 이미륵박사는 지병으로 51세의 젊은 나이에 타계했다 (1950년 3월 20일). 이 박사는 생전에 그와 함께 살던 독일인 자일러(Seyler)가족과 독일 친구들에게애국가를 가르쳐 주어 그의 장례식 날 애국가가 독일인들의 입을 통해 묘소에 울려 퍼지기도 했다. 그야말로 조국을 독일인 가슴에 전해 준 분이었다. 이박사는 1911년에 황해도 고향에서 부인 최문호씨와 결혼해 슬하에 아들 명기(1917)와 딸 명주(1919)를 두었으나 독일유학으로 이별한 뒤 타계 때까지 헤어져 만나지 못한 채 눈을 감고 말았다.

지금은 큰 누님의 손자인 이영래씨 (현재 인천광역시소재 (주)삼화제작소 대표이사, 이미륵박사 기념사업회 회장, 유족대표)가 이 박사의 묘소를 돌보고 있다. 이영래씨는 3월 22일에 이미륵박사 타계 53주년 추모제에 참석, 이미륵박사의 흉상을 가지고 와 기증식을 가졌다. 이 흉상은 현재 송준근씨가 보관하고 있으나 장래에 뮌헨에 이미륵박사 기념관이 건립되면 그 곳에 전시할 예정이다. 흉상은 총 5개가 있는데 첫 번째 흉상은 1997년에 묘비제막식 후 베들린에 있는 한국문화원으로 옮겨져 거기서 보관중이다. 두 번째는 1999년 한국 국립도서관에서 이미륵박사 탄신 100주년 기념행사 때 만들어 그 곳에 소장되었고, 나머지 두 개는 프랑크푸르트 총영사관과 손자 이영래씨가 각각 보관하고 있다. 뮌헨소장을 위해 이번에 손자 이영래씨가 가져온 것이 마지막 다섯번째이다.

송준근씨는 “이미륵박사를 재독 한인들의 중시조로 보아야 하지 않는가”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독일 교민사회가 형성된 지 40년이 되는데 이미륵박사가 독일에 온 것은 1920년대이므로 이 박사로부터 한인사회의 뿌리를 찾아야 할 것이라는 견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많은 한국 사람들이 삼, 사십년 독일에 뿌리를 내리고 살지만 이박사만큼 독일사회와 한국사회간의 문화적 접목을 시도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독일 전체에 잘 알려진 유일한 분일 뿐 만 아니라 30년의 이국생활 동안 독일사회에서 동과 서의 문화를 이어주는 교량적 역할을 한 분으로 그 의의가 자못 크다는 것이다. 당시 그래펠핑은 독일의 지식층이 많이 살았던 곳이라, 이박사는 그 곳에 살면서 독일문인들과 쉽게 접촉 할 수 있었고, 그의 동양사상을 그들에게 친숙히 전해 줄 수 있었다. 이런 그의 문화를 접한 독일인들은 동양과 한국문화에 대해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박사는 독일인들의 존경을 받으며 독일문화원을 직접 세우기도 한 Tiergarten 박사와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백장미사건(뮌헨대학교의 숄남매가 히틀러에 반대해 항거한 사건)으로 감옥에 수감되었던 (1943) 뮌헨대학총장 K. Huber 씨와도 친분이 아주 두터웠다고 한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패망의 아픔을 안고 폐허가 된 속에서 국민들이 정서적 공황을겪고 있을 때 그의 선비다운 정직성과 정신은 독일 국민들에게 귀감이 되기도 했다. 독일신문에서까지 극찬할 정도였다. 예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 국민에게 배급제를 실시해 모든 생활필수품 및 식량을 배급 받을때 이 박사는 자기에게 실수로 더 주어진 배급표 한 장을 기꺼이 반납했다. 자기가 더 받은 배급표 한 장 때문에 다른 사람이 굶어야 한다는 걱정이 앞서 표를 반납한 것이다. 또 다른 예는, 전쟁 직후 1948년 화폐개혁때 돈 가치가 하루사이로 떨어져 휴지로 되어버린 전날 구화폐로 산 문갑을 화폐 개혁 바로 다음날 바로 신화폐로 계산하여 목수에게 지불했다는 일화다. 자기가 준돈이 휴지조각이 되어 마음 아파할 이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의 이런 이야기들은 독일 신문에까지 실려져 독일인들의 마음에 훈훈한 감동을 주기도 했다. 정신적으로 고고하게 사신 분이었다.

10여년간 이미륵박사의 묘소를 지켜 온 송준근씨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네덜란드 헤이그의 이준 열사의 묘소처럼, 이미륵박사의 묘역두 우리의 유적지로 지정되어 정부차원에서 관심을 가지고 돌아 보는 것이다. 국가 차원의 관리 뿐 아니라 홍보도 널리 하여 뮌헨에 온 한국 관광객이라면 적어도 그곳을 방문하고 참배
할 수 있도록 우리 문화유적지로 개발되기를 소망한다. 또 뮌헨 교민에게 드리는 부탁은 매년 3월 묘소참배시 치루게 되는 전통적 유교제사의식을 전통문화행사라고 생각하여 거부감 없이 참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것은 한국 전통문화의식을 독일인들에게 알려주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하고, 또 독일에 사는 2세들에게 한국의 문화를 가르칠 수 있는 교육적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언젠가 뮌헨에 이미륵박사 기념관이 세워져야 할텐데 그때 각계각층이 적극적인 경제적 후원도 기대한다고 전한다. 가장 소박한 바람이 있다면 뮌헨을 찾는 한국관광객이 Hofbreuhaus(뮌헨에서 가장 큰 맥주집) 만을 찾는 것이 아니라 독일에서의 우리 유적지인 그래펠핑의 묘역도 방문하게 되는 것이다.

송준근씨는 현재 아우그스부르크에 사는 전덕문씨 가정과 뮌헨의 강은식씨 가정의 협력아래 일년에 한번씩 하는 추모제를 주도하고 있으며 이미륵박사 기념사업회의 실질적 업무를 맡아 책임지고 있다. 자세한 정보나 자료는 송준근 사장이 운영하는 아시아 식품점 (Mozartstr. 3, 80336 Muenchen, Tel.: 089 / 531906 )을 방문하면 얻을 수 있고, 최근에는 다림출판사 에서 정규화 교수에 의해 번역 (그림 윤문영), 출판된 책 ‘압록강은 흐른다’ (상,하)를 빌려 볼 수도 있다.

정리 : 김 명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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