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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륵 소설에 나타난 고향의식연구⑤

문학평론가. 부산문인협회 회장 정영자 2011.12.12 13:19 조회 수 : 6041

5. 이미륵 소설의 특성

 

『압록강은 흐른다』는 저자가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하는 어린 시절부터 20대 초반 독일에 도착하기까지의 이야기다. 한학을 배우다가 신학문을 가르치는 학교에 들어가고, 당시 최고학부이던 서울의학 전문학교에 들어간 뒤 3.1운동에 가담한다. 그리고는 쫓기듯 압록강을 넘어 상해를 거쳐, 독일로 유학을 간다. 슬프고 어지러운 역사가 배경이지만 한탄이나 분노를 되풀이해 강조하는 모습이 없어 이야기 전개가 간결하다.

일제에 의해 옛것들이 폭력적으로 사라져가는 모습은 더 슬프게 다가오고 신학문에 대한 설레임과 잃어져 가는 것들에 대한 슬픔의 정서가 가로 세로로 얽히면서 마침내 세상과 혼자 맞서는 한 청년을 만들어가는 이 소설에는 서사적 감동과 품격이 있다.

내용적 특성과 소설 구조적 특성을 간략히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전통, 관습, 풍속, 자연 등 우리의 문화와 우리의 정신을 구현하며 꾸준하게 민족혼과 향수를 표현하면서 동양인의 긍지와 정서를 격조있게 소박, 단순, 담백한 수체화처럼 그려 놓은 소설이다.

조국을 잃고 유랑하는 이방인의 글에 독일인들이 아낌없는 찬사와 열광을 보내 주게 된 밑바탕은 너무도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면서도 끝내 그가 잃지 않았던 고결한 선비정신과 고요한 동양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둘째 기억의 장치를 통하여 자신의 진정성을 식민지 소년에서 식민지 청년으로 성장해 가는 비애를 간접적으로 묘사하면서 조국의 상황과 독립운동의 당위성을 설파하고 있는 자전적 소설이며 소년소설, 성장소설이요 고백적이고 회고적이어서 더욱 호소력 있는 소설이다.

무엇보다 이 소설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지난 우리 역사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구한 말 태어나 혼란스러웠던 격동기를 겪은 주인공은 바로 작가 자신의 또 다른 분신이다.

사촌 수암에 대한 회고로 시작한 『압록강은 흐른다』는 눈 내리는 망명지의 아침에 지난 가을 어머님이 며칠 앓으시다가 세상을 떠나셨다는 큰누님의 편지를 받는 것으로 끝이 난다. 섬약하고 조용한 한 소년이 청년으로 자라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난의 유랑 끝에 독일에 도착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까지의 자전적인 기록이다.

그가 그려 낸 풍경화 속에는 우리가 오래전 잃어버린 순수의 시대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자애로운 누이와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 엄격한 선비였던 아버지에 대한 추억, 그리운 친구들, 잊을 수 없는 고향과 압록강의 정경들, 낯선 세계에 도착한 청년의 두려움과 설렘, 향수가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이미륵은 국내보다는 독일에 훨씬 더 잘 알려진 작가이다. 그래서 그는 독일문단의 주목을 받았고, 특히 『압록강은 흐른다』에 대한 서평과 문체평은 1백여 편이나 된다. 독일어 특유의 정돈된 문체를 사용해 인물이나 배경을 한국적인 깊이로 표현해낸 부분에서도 이미륵의 작가적인 역량을 재확인할 수 있다.

 

 

셋째 이미륵을 연구한 정규화교수가 밝힌 대로 소재의 단일성과 문체의 간결성을 들 수 있다.②  한국적인 전통과 문화를 말하면서 윤리와 도덕을 추구하는 삶의 지향성과 한민족의 정체성을 뚜렷이 하고 있다. 일체의 설명이나 과장 묘사를 제거하고 사건 자체의 골격만을 간결하게 서술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생략의 글쓰기와 압축미, 그리고 전경화의 방식과 대위법적 독해를 통하여 표면적 내용과 내면적 암시와 감추어진 부분을 동시에 읽어 당대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전략적 글쓰기를 하고 있다.

 

넷째 따뜻한 인간애, 평화주의자의 특성을 끝가지 견지하고 있다. 소설들은 이런 그의 휴머니스트적 면모가 유감없이 드러난 작품이었다. 소박하고 간결한 표현법과 친근감 가는 작가의 유년시절 묘사는 문화의 차이를 뛰어넘어 독일인들에게 인간본성에 대한 원초적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장롱 위의 꿀을 훔쳐 먹다 들켜 혼난 일화며 손톱에 봉숭아 꽃물들이던 기억, 쑥뜸의 공포, 잠자리채 이야기 등은 아주 토속적인 한국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누구나 갖고 있을 유년에의 동경이었다.

고 이미륵 박사의 탄생 1백주년을 맞아 그의 휴머니스트적 면모가 새롭게 조명됐다.

정규화 교수는 1999. 03. 12. 독일 뮌헨의 괴테포럼에서 열린 "이미륵박사 탄생 1백주년 기념 강연회"에서 이 박사를 "세기의 휴머니스트"라고 평가하고 "그의 작품은 물론 생활속에서도 휴머니즘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섯째 가족이라는 원초적인 관계를 중심으로 당대의 현실과 풍속을 빼어나게 그려내고 있다.

 

"어머니, 제가 왔어요."이렇게 말하고는 어머니를 끌어안았다. 한참이나 이렇게 앉아 있다가 수심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에게는 아들이 자기를 껴안았다는 사실만이 소중했다. 그 일은 너무나 값지고 성스럽기까지 했다. 어머니는 아들이 껴안아 준 것만을 가슴속에 간직한 채 조용히 방으로 돌아왔다.

-본문에서

 

여섯째 그리움과 아픔을 문학치료학적 관점에서 고찰할 수 있는 택스트라고 할 수 있다.

작품에는 어린 시절에 대한 작가의 애착과 그리움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러한 애정은 책이 나올 당시 출판사 사장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그는 편지에서 ‘소박했던 어린 시절을 서술하는 데 장애가 되는 일체의 기교와 서술적인 묘사를 배제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미륵은 성공한 삶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어렵게 조국을 탈출해서 독일에서 공부도 하고, 강의도 하며 독일인들의 찬사를 받는 작품을 쓴 작가가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담담하게만 써 내려간 것처럼 보이는 이 책 속에는 조국을 등져야했던 이미륵의 서러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그는 표현을 통하여 그 그리움을 극복하고 있다.

일곱째 책의 표제로 사용한 “압록강”은 고향이며 조국이다. 우리의 정신적 고향이며 지주로서 우리의 감성과 사고가 비롯되는 근원의 강, 그 가슴 속에 항상 흐르고 있는 어버이 나라에 대한 향수와 정신적 발원지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의경이라는 본명대신 아이적 때의 이름인 이미륵을 필명으로 사용한 것은 부모님을 생각하고 어린 날의 고향을 생각하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의 어머니가 애끓는 불공을 들여 나이 서른 여덟에 낳은 아들이다. 미륵이란 아명은 바로 거기서 유래한다. 나중에 아들은 그것을 필명으로 사용함으로써 어머니를 영원히 기리게 되지만 끝내 다시 보지는 못했다. "다시 보지 못하더라도 너무 슬퍼하지 마라". 이 미륵의 어머니는 그 때 이미 자신의 미래를 예견했는지 아들과 작별을 고해 둔 셈이다. 약관(弱冠)의 나이에 먼 독일땅으로 망명해야 했던 저자가 "모든 것이 작고 맑기만 했던" 사랑하는 조국과 어머니에게 바친 헌사다.

 

여덟째 중국고사와 일화 등을 수록하여 한문학에 대한 깊은 조예를 엿볼 수 있다.

책의 전반부에는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한학(漢學) 수업이 소개되어 있다. 천자문(千字文)으로 시작해 '동몽선습(童蒙先習)'을 거쳐 '통감(通鑑)'과 '당시(唐詩)'에 이르는 그 시대 통상적 교과과정이었다. 그러나 자상했던 그의 아버지는 정규 학습 외에도 몇 가지 독특한 교수법을 보여주는데, 그중 윷판에다가 관직의 명칭을 차례로 적어 놓고 운자(韻字)를 부른 다음 아들이 그 운에 맞는 짧은 글귀를 대면 승진시켜 주는 놀이가 있다. 관직이 유일한 입신(立身)의 길이던 시절에 관직의 명칭을 외워 출세의 동기도 부여할 겸, 필수교양으로서의 한문도 익히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학습법이라 하겠다.

사촌과 함께 시골 생활을 하며 서당에서 한학을 배울 때 생긴 에피소드, 신식학교 교육 과정을 통해 새로운 학문에 눈뜨게 되는 과정, 신식 문물이 들어오면서 겪게 되는 혼란들이 당시의 복잡했던 사회 모습을 전해준다.

 

결론으로 이미륵 소설의 내용적 특성은 고향에서 출발하여 고향으로 끝나고 있는 고향의식이 짙게 깔린 소설이다. 그 톤은 수체화의 화풍처럼 잔잔한 흐름이지만 쓸쓸하고 슬프다.

담담함과 정갈함 그리고 따뜻함, 그는 글에서 아프다고 하지도 않았고 슬프다고 하지도 않았지만. 그의 글은 아프고 슬프고 또 아름다웠다. 그건 그가 그 고통스런 역사를 피하지 않고 겪어내었고, 그가 겪어낸 그 세월을 담담히 이야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죽음의 위험에도 의연하였고 현실을 피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글처럼 소박하고 정갈하고 또 곧았다. 그의 삶이 바로 그의 글이었다. 소설이야말로 그의 일대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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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정미경 작가 , 압록강은 흐른다, 동아일보 2005.11.29

② 정규화,이미륵의 생애와 문학, 이미륵, 압록강은 흐른다, pp.426-427 참고

③ 최윤영은 강용흘의『초당』과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를 초기 이민문학의 대표작으로 보고 민족지의 시학

    이라는 관점에서 비교하고 있다. 일제강점기하에서 외국에서 체류하던 한국인들은 빼앗긴 나라, 두고 온 고향에

    대한 향수에 젖어 점차 사라져 가는 한국, 한국인, 한국문화에 대한 글을 쓰게 된다. 내부자의 시각에서 한국을

    써내려감으로써 개인의 자전소설이면서도 한국의 문화와 풍습을 소개한 민족지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저자는 강용흘의 작품을 '능변의 글쓰기'로, 이미륵의 작품을 '생략의 글쓰기'로 규정하고서 그 공통점과 차이를

    분석하였다.

④ 김성언, 불어라, 바지바람 부산일보, 2007,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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