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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륵씨와 함께 보낸 가을②

엘리자베트 샬크 2012.03.09 15:12 조회 수 : 7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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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구라파여자와?』 우리들은 놀랐다.

『그럼, 사흘 전에 여기를 떠난 집안의 딸이란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으나 또한 어떤 안정감을 주었다. 그의 성질은 종종 우울에 뒤덮였고 우리들은 그가 외국인임을 불쌍히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알고 보니 우리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외롭지도 않았고 벌써 안주하고 있지 않은가. 잠들기 전에 우리들은 거기에 관해서 오랫동안 이야기 했다. 동양 사람과 독일여자와의 결합이 우리들에게는 어느 정도 모험처럼 느껴졌다. 비록 그는 섬세하고 영리하고 또 좋은 사람일 것이지만 과연 저 인종 차별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인지?

매일 아침 햇볕이 눈부시게 빛났다. 아침은 언제나 혼자 있고 싶어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박사와 함께 콩나물 정원에서 먹었다. 그는 오늘도 바쁜 일을 제쳐놓고 우리를 따라 시내의 렌겐계무으로 인도해 주려 하였다. 그가 버려둔 일이 무엇인지 우리는 가는 도중에 들었다. 그는 단편을 쓰고 있으며 이 소설의 주인공 즉 열정적인 소녀에 알맞은 이름에 관해서 우리들의 의견을 요구하였다. 레오니라고 할 것인지 말고트라고 부를 것인지 우리들은 아무러한 결정도 얻지 못한 채 다만 그에게 시간 소비를 그만두고 돌아가서 쓰도록 권고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여자들에게 싫증이 나면」곧 돌아가겠다고 보증하였다.

우리들은 Coltlcum꽃이 피어 있는 목장을 더 가서 숲으로 들어갔다. 길은 언제나 시냇가를 따라 있었고 몇 번이나 단순한 나무판 다리를 건너야 했다. 계곡은 점점 좁아지고 큰 암석과 자갈들이 물줄기를 이리저리 돌게 하고 있었다. 햇볕이 내려 쪼이는 협곡이 더위에 타기 시작하자 맑은 물은 우리를 꾀었고 큰 바위는 앉기를 권하였으므로 우리들은 신과 양말을 벗고는 물을 튀기고 잠시 동안 쉬었다. 물이차기가 얼음 같았다. 우리들은 그림 같은 주위 환경을 배경으로 우리의 동반자와 많은 사진을 찍었다.

『나는 이번 여름에는 극히 조금 밖에 사진을 찍지 않았습니다.』고 그는 이야기 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등산 스텍키로 목장에서 「투창」을 연습하였고 박사도 또한 날씬한 포오즈를 보여 주었다. 그는 유능한 친구였고 놀이를 망치는 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뿐 아니라 우리들은 완전히 다른 문화권에 속해있어 이제껏 신기하게 생각해 오던 덧을 알려주는 이 먼 세계에서 온 이방인과 가까이 접촉할 수 있는데 어떤 유혹까지 느꼈다. 일찍이 닥아오는 어둠과 가을다운 차거움이 우리로 하여금 밤은 집에서 보내도록 하였다. 아무런 약속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씨방에 모여 앉아 같이 저녁을 먹는 것도 당연한 일이 되었고 그는 또한 손님을 접대할 줄 알았다. 저녁 뒤에 우리들은 잠잘 시간까지 서로 이야기 하였고 또 그의 먼 고향이며 어릴 때 이야기며 학문에 관하여 많이 들었었다. 비히라부인도 또 아마 같이 기타를 켰고 또 노래를 따라 불렀으리라. 규칙적으로 두 소녀레제트와 마리이가 와서는 안주인에게 바느질거리를 갖다 주었다. 키 큰 집주인은 밤마다 문지방까지 와서는 여러모로 「안녕히 주무시기를」바라고는 다시 가곤하였다.

『이제야 그는 행복하다 이박사가 다시금 여자들을 가졌으니』 레제트는 콧소리로 이야기했다. 사실 그랬다. 우리들은 나날이 더 그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인것 처럼 보였다. 우리들 없는 조반이나 저녁은 없었다. 오정에는 자주 부탁하는 것이었다.

『너희들이 없으면 일할 수 없으니 빨리 돌아와.』

 

두책상의 한쪽에 우리들이 조용히 앉아있으면 다른 쪽에 시인이 앉아서 줄거리가 떠오를 때까지 때때로 일을 중단하고 명상하면서 쓰곤 하였다. 우리들이 윗층에서 잘 때엔 아래층에서 타이프라이타 소리가 들려오곤 하였다.

『밤일이 제일이야』라고 그는 단정하였다.

『왜냐하면 그때야 말로 내가 생생해 지기 때문에.』

물론 일하고 싶지만 또 거기서 떨어져있을 수도 없는 여러 장애가 있기도 했다.

예를 들면 처음으로 우리들이 비밀을 알게 된 크로켙트노름이 그것이었다. 우리들의 선생이 많은 전문용어로 화법을 아무렇게나 우습게 이야기 하는 것을 듣는 것도 또한 재미있었다. 때로는 또 회색범 처럼 되어 있는 고양이 페텔르가 이씨방문을 기어 올라와서는 애무해 받고 싶어 했다. 마음이 좋은 그는 결코 쫒지를 않고 침입자가 저절로 철퇴할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렸다. 우리는 한국인의 정신세계에 대해서 이제까지 보담 더 깊은 견해를 가지게 되었고 그의 구라파 문화에 대한 포괄적인 지식과 가치 있는 것에 대한 섬세한 이해에 경탄을 마지않았다. 그는 유명작가의 문체의 특질까지 구별하고 평가할 수 있었다. 이것은 그가 독일어를 완전히 지배할 수 있는 것으로만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그는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매우 슬픈 고독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나는 불 때지 않은 방에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하여 침대에 들어가야만 했다. 그때 나는 수도원에서 축출된 한 신부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있는 책을 읽었다. 그는 모함과 불행에도 불구하고 심령의 평화와 인류애를 끝까지 보장하였다. 그건 매우 아름다웠다』

그는 결론적으로 말했다.

『그리하여 나는 모든 나의 슬픔을 잊어버리고 가장 좋은 크리스마스를 축하했었다.』

그는 이날 밤 유달리도 조용하였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둠이 외면적 현상의 낯선 것을 지워 버렸기에 우리들은 완전히 친밀해졌다. 밤의 어둠이 모든 것을 완전히 휩쓸었기 때문에 외면의 다양성과 충만에 현혹되거나 주의를 빼앗김에 없이 서로들 쉽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우리들은 산보에서 돌아와 침실에서 잘 때면 곧잘 명상에 잠겼고 무엇엔가 감동되고 있었다. 우리는 진정한 인간성이 결합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고상한 성격이며 섬세한 감수성 좋은 마음씨 거기에 영리하고도 총괄적인 교양.

아침에는 너무 일찍 일어났다. 이박사의 잘 주무셨느냐는 정중한 물음에 우리는 바른대로 말할 수가 없어서 당황함을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말았다. 질문자는 그의 질문이 어떤 인상을 주었는지 알지 못 하였었다.

 

 

* 1959년 서울에서 발간된 월간지《여원》(6월호)에 “이미륵과 함께 보낸 가을”中 (전혜린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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