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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27일 여의도에 있는 국가보훈처에서 ‘이미륵박사기념사업회’ 정규화 회장님과 유족 대표 이영래는 이미륵(李儀景) 박사에게 수여되는 독립유공자 훈장증과 훈장을 받았습니다.

기념사업회에서는 지난 2월 세종대학 국어국문학과 김종욱 교수님이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찾은 자료와 정 회장님이 독일에서 수집한 각종 자료를 모아 국가보훈처에 제출한 바 있습니다.

얼마 전, 국가보훈처로부터 이의경과 이미륵이 동일 인물임이 확인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미 1990년도에 독립유공자 애족장을 받으셨다는 설명도 들었습니다.

훈장증 추서는 무려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90년 12월 26일 자로, 당시 노태우 대통령, 강영훈 국무총리에 의해 제2019호로 추서 되었습니다.

국가보훈처에서는 "이의경"으로 추서하였고, 독일에서의 문인 활동 이후에는 필명으로 "미륵 리"라고 쓰신 것과 일치하지 않았고, 국내유족과 연락이 안 되었던 까닭에, 이제껏 국가보훈처에서 독립유공훈장증을 보관하게 된 것입니다.

이의경은 1919년 9월 일본법원으로부터 궐석재판으로 2년 구형을 받으셨습니다. 당시 이의경은 중국 상해로 망명 중이었습니다. 상해에서 1년 체류 기간 중 적십자 대원으로 활약하며, 일본 경찰로부터는 수배자로 체포 감시 대상이었습니다.

1920년 프랑스 마르세이유를 거쳐, 독일 뷔르츠부르크, 하이델베르크, 다시 뮌헨에서 학업을 하던 중, 1927년 세계피압박민족대회에 4명의 한국 대표 중 일원으로 조국의 독립을 외치는 유인물을 들고 참석하였고, 독일 신문에 조국의 독립을 주장하는 내용의 기사를 게제하는 등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전적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1946년 발간)를 통해 일본에 의해 강점된 조국과 일본의 만행을 세계 만방에 알렸습니다.

삼가 이 훈장증과 훈장을 고인이 되신 이미륵박사님의 영전에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