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에두아트 구텐존(Eduard Gutensohn), 마리 슈나이데빈(Marie Schneidewin) 남매  

  독지가인 알프레트 자일러 교수의 자녀들인 오토와 베르타의 전언에 의하면 뮌헨에서 이미륵과 격의 없이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 중 기억에 얼른 떠오르는 사람들은 구텐존 형제(브루노와 에두아트)와 에곤 베른하르트 베너(Egon-Bernhard Wehner)라고 하였다.

  필자는 우선 가까운 곳에 사는 분들을 어떤 방법으로라도 빨리 찾고 싶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소식에 의하면 브루노는 불행히도 1969년에 별세했다고 했고, 베너는 전쟁이 끝나고 4년 후(1949) 스웨덴으로 이민 갔다는 것이었다. 구텐존 형제는 1930년대 초 뮌헨의 슈바빙 근방에서 그림을 그리며 살아갈 때, 영국에서 뮌헨대학으로 미술공부를 하러 온 해랄드 투비(Harald Tooby)를 만나러 갔다가 그곳에서 그와 함께 자취하고 있는 이미륵을 알게 되었다. 성격이 모두 잘 맞았던지 서로 의지하며 오랜 기간 우정을 유지했다고 한다. 이 일행이 가끔 함께 다녔다는 휴양지를 언젠가 오토가 자세히 알려 주었다. 오토에 의하면, 이미륵이 1930년대 초에 때로는 혼자, 때로는 친구들과 함께 자주 아르츠바하(Arzbach), 렝그리이스(Lenggries) 등지로 휴양 차 떠났다고 하였다.

  오토 자일러는 아르츠바하에 살았던 코올아우프(Kohlauf)라는 사람을 어렴풋이 기억하면서 필자에게 그곳이 어디인지 알려 주었다. 오토가 이렇게 기억하는 이유는 자신도 이미륵과 부모님을 따라 언젠가 한번 그곳을 다녀온 일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필자는 아르츠바하 시청에 콜아우프라는 이름만 알리면서 현재의 거주지를 문의했더니 1972년 10월 31일자로 공문이 왔다. “랭엔탈슈트라쎄(Längentalstrasse) 21번지”라는 내용이었다. 그 집 남편 알로이스(Alois)와 부인 마리아(Maria)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양녀로 입양한 마리아 파이흐트(Maria Feicht)가 현재 위 주소에 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일면식도 없는 마리아 파이흐트 여사에게 이미륵과 관계되는 내용을 묻는 편지를 써 보냈더니, 1972년 12월 11일자로 반가운 회신이 왔다.

  이미륵과 그의 친구들이 1935년 가을 경까지는 가끔 그곳에 와서 산책도 하고 쉬다가 갔으나, 그 이후로는 자주 오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곳에 왔던 사람들 중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사람은 이미륵은 물론, 브루노(Bruno) 구텐존과 에두아트 구텐존(1905~1986) 형제였다고 한다.

  당시에 자기 나이는 겨우 아홉 살이었기 때문에 낯선 사람들이나, 특히 외국인을 만나면 수줍어했고, 때로는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필자는 연말에 차를 직접 몰고 그곳에 찾아가서 그곳 경치와 분위기를 보고, 또 파이흐트 여사도 직접 보고 나니 당시의 분위기가 조금은 느껴지는 듯했다.

  파이흐트 여사는 기억도 새롭다면서 옛날 얘기 한 토막을 해 주었다. 어느 해 여름인가, 이 청년들이 울창한 나무 밑의 개울가에 원두막을 지어 놓고 그 위에서 책도 읽고, 재미있게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자 이들이 허겁지겁 대피하였고, 황급히 줄행랑을 치는 것을 보고 놀란 일이 있었다고 했다.

  파이흐트 여사를 통해 오버아우도르프(Oberaudorf)에 사는 로제 크놀(Rose Knoll) 여사의 주소를 받게 된 것이 행운이었다. 브루노의 여동생인 마리 슈나이데빈(Marie Schneidewin)의 친구인 이 크놀 여사가 슈나이데빈 여사가 사는 뮌헨의 연락처인 포겔하르트슈트라쎄(Vogelhardtstrasse)를 알려 주어 에두아트 구텐존과도 쉽게 연락이 닿을 수 있었다.

  슈나이데빈 여사의 큰 오빠인 브루노 구텐존은 화가였고, 1930년대 초 이미륵과 가장 가까운 사이였다는 것은 여러 사람이 증언하고 있으며, 또 이미륵이 남긴 서간문에도 브루노의 이름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필자가 추적 작업을 시작했던 바로 다음 해, 즉 1969년 필자가 독일에 있을 때였는데 브루노를 한번 상봉도 못한 채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다. 가장 가까웠다는 친구이니 그로부터 중요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었을 텐데 매우 안타깝게 되었다. 그 대신 뮌헨의 힐데볼트슈트라쎄(Hildeboldstraase) 22번지에 살았던 브루노의 남동생 에두아트 구텐존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미국으로 이민 간 브루노의 딸 발트라우트 바르취트(Waltraud Bartscht)와도 연락이 닿아 사진도 받고 오랜 동안 서신왕래가 있었다.

  오버아우도르프에서 파이흐트 여사를 만나고 온 즉시 로제 크놀 여사가 알려 준 주소로 슈나이데빈 여사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궁금한 내용들과 이미륵에 대한 정보를 부탁하였다. 그런데 바로 며칠 후 슈나이데빈으로부터 회신이 왔다. 이미륵과 같은 훌륭한 ‘고향사람’이 남긴 돋보이는 업적을 수집하고 있다니 그것은 뜻있고 고마운 일이라고 매우 좋아하는 내용이었다. “왜냐하면 사람이 살아가면서 그렇게 훌륭하고 가치 있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며, 자신이 소지하고 있는 것은 편지 한 통, 이미륵으로부터 선사받은 《압록강은 흐른다》와 《이야기》들이 실린 조그마한 책자가 있었는데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 찾아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두 오빠와 함께 찍은 사진도 한 장 있어서 나중에 복사하여 받았다. 큰 오빠 브루노가 불행히도 3년 전에 별세하였는데, 그 오빠가 살아 계셨더라면 이야깃거리가 상당히 많았을 텐데 아쉽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뮌헨대학교 한학과에 다녔던 에파 크라프트(Eva Kraft)는 이미륵의 제자인 동시에 애인이었으므로, 그리고 이미륵이 그래펠핑의 자일러 교수댁에 아들처럼 오래 살았기 때문에 그분들을 찾아서 만나면 많은 소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조언도 주었다. 또한 영국에 사는 작가 리하르트 프리덴탈(Richard Friedenthal)이 1950년대 말경 펜클럽 일로 한국에 나갔다가 모처에서 이씨의 누님을 만나고 와서 한국에 관한 글도 썼으며, 어느 방송국에서 한국에 관해 방송도 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이 방송국은 바이리셔 룬트풍크 (Bayerischer Rundfunk)였으며, 1959년 4월 29일 ‘한국에서 온 소식’(Notizen aus Korea)이라는 제목이었다.

  뿐만 아니라 슈나이데빈 여사는 자기도 “이미륵이 마우러(Maurer)라는 독일 여성과 결혼했다”는 말을 들은 바 있으며, 그 여성은 오래 살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떴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필자도 그런 말을 어디서 들은 바 있지만, 당시만 해도 그 정보를 그저 떠도는 소문같이 생각하여 크게 관심을 갖지 않고 있었던 터라 그 말의 내용에 대해 신빙성을 갖기가 매우 어려웠다. 이 부분은 ‘로자 마우러’ 단원에서 조금 더 자세히 언급하기로 한다.

  곧 에두아트와도 연락이 닿아 우리는 그의 집으로 초대받아 갔었다. 많은 대화를 나누다가 에두아트가 1945년 뮌헨에서 결혼할 때 이미륵이 결혼 증인이었다는 얘기도 하며, 그때 찍은 사진도 보여주었다.(이 기념사진은 사진첩과 홈페이지에 정리되어 있다.) 그리고 1936년 이미륵으로부터 받은 편지 원본 몇 통을 필자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 중 보통 안부 편지라기보다는 이미륵의 생활철학이 담긴, 특히 남에게 무엇을 주고받는 행위에 대해 써서 보낸 흥미 있는 편지 한 통의 일부를 소개한다.

 

  친애하는 에두아트에게, (……) 나중에 더 큰 것을 돌려받기 위해 남에게 무엇을 준다면 그 선물이  야말로  하나의 미끼로서 그것은 좋은 일이 아닐세. 주고 싶은 마음도 없으면서 양심상 어쩔 수 없이 주는 것이라면 그것 또한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 없네. 그 선물이 남에게 왜 유용한지도 모른 채 주는 것이라면 그것도 좋은 일이 아니지. 왜냐하면 그 행위는 남을 돕기 위한 직접적인 동기에서가 아니라, 다만 사람들이 좋다고 말하는 것을 하고 싶은 동기에서 행해지기 때문이지. 이와 마찬가지로 의도적으로 행해지는 선물도 좋은 것이 아닐세. (……)

                                                                                   ―1936년 여름, 자네의 미륵으로부터.

 

  브루노나 에두아트 두 사람 모두 화가였고, 더구나 에두아트는 1974년 필자가 독일 EOS 출판사에서 《압록강은 흐른다》(3판)와 독문 유고집 《이야기》(초판)를 출간할 때 표지그림과 이야기의 삽화까지 그려줘서 그 책 모양들이 더욱 돋보였다.

  뿐만 아니라 에두아트는 그가 이미륵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공자의 ‘四海之內皆兄弟’(사해지내개형제)라는 박애주의 내용을 담은 친필 서예문구를 액자에 넣어 현관 벽에 걸어 놓고 있다가 필자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 후 우리 내외는 슈나이데빈 여사 댁뿐만 아니라, 에두아트 구텐존 댁에도 몇 차례 초대받아 1930년대와 40년대의 이미륵과 얽힌 얘기를 더 들을 수 있었으며 서신왕래도 오랫동안 지속하였다.


범우사발행 [책과인생]  2009년 8월호